[여성의 창] 윤아영ㅣ전업주부는 억울하다
2015-05-21 (목) 12:00:00
살면서 소위 ‘여성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딸’이라는 혹은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차별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부부가 뭐든 똑같이 반반 해야 한다 생각하는 남편을 만난 덕에, 결혼을 하고 나서도 크게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 온 뒤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본의 아니게 전업주부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어쨌든 직장을 쉬니까 얼마나 좋으냐며 일단 부러움을 내비치곤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가사 노동’에 전면 노출된 내 생활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여유 있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친정 엄마가 밑반찬을 해주셨고, 점심은 각자 직장에서, 저녁은 회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특별히 먹고 사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선 다르다. 하루 세끼를 매번 차려 먹는데, 대체 주방에서만 몇 시간을 보내는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더러워지는 곳은 왜 그렇게 많은지 안 하면 티 나고, 해 봤자 티 안 나는 일들이 끝없이 나를 기다린다.
얼마 전 남편이 “오늘은 내가 설거지를 도와줄게”라고 하는데 갑자기 화가 나는 것이다. “그게 원래 내 일이야?” “그럼, 당신은 지금 돈을 안 버니까 집안일을 해야지.” 맙소사. 그건 원래부터 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이 미혼으로 유학을 왔다면 혼자 힘으로 다 해야 하는 일이었다. 공부하는 데 좀더 집중하라고 내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 당신의 일을 무임금으로 대신해 주고 있는 것이다. 같은 시간 직장에서 일한다면 내 몫으로 떨어지는 월급이라도 있을 텐데, 당신이 나를 도우미로 고용한 것도 아니면서 내가 가사를 전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니. 남편을 사랑해서 지금껏 기꺼이 뒷바라지를 해왔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로 희생이 (대가 없는 노동은 분명 희생이다) 정당화될 수는 없다. 최소한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은가?
다행히도 지혜로운 우리 남편은 곧바로 본인의 잘못을 시인하고 깊이 참회했지만, 여전히 저렇게 생각하는 남편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 안타깝고 답답하다. 어쩌겠는가. 30년 넘게 엄마의 희생을 당연히 생각해 온, 그걸 이제야 깨달은 나부터 반성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