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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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음악 오디세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015-05-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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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석<음악박사>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 하세요…" 의 주인공 폴르는 39살의 중년 여성이고, 사귀는 남자 친구 로제가 있다. 그들에게 새로움이란 없다. 그저 같은 하루를 반복할 뿐이고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상으로 서로를 인정할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25살의 잘생기고 멋진 청년 시몽이 열렬히 구애를 한다. 어느 날 음악회에 초대장을 보내며 시몽은 거기에 이렇게 적어 보낸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말줄임표의 의미는? 그는 대체 무슨 말을 더하고 싶었던 것일까?

청년 시몽이 말한 브람스는 또 누구일까? 브람스가 클라라를 처음 만난 것은 20살 시절이었다. 클라라는 브람스보다 14살이 더 많은 34살이었고 그의 스승 슈만의 아내였다. 천재적인 재능의 음악가였지만, 아직 무명이었던 브람스의 재능을 알아본 슈만과 클라라는 스승으로 뿐만 아니라 후견인으로 그를 돕는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모르는 일이었다. 스승의 부인, 클라라를 향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 할 줄은! 도덕적이고 보수적인 사람 브람스는 스승에 대한 신의와 의리를 저버릴 사람이 아니기에 그의 사랑은 더욱 안타깝고 애처롭다. 슈만은 젊은 나이에 정신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다. 그래도 브람스와 클라라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스승과 그의 아내를 향한 예의와 신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후 브람스는 40년 가까이 슈만의 자녀와 클라라를 보살피며 독신으로 지낸다. 그 사랑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는 일기에 자신의 가슴을 총으로 쏘는 것 같다고 했다. 수많은 편지를 교환하고, 많은 곡을 그녀에게 헌정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우정으로만 지속될 뿐이었다. 그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는 클라라가 77세로 세상을 떠난 이듬해 끝이 난다. 브람스 그도 64세에 같은 병으로 그녀의 뒤를 따라간 것이다.

브람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들어내지 않고 안으로 모든 것을 간직하는 사람, 그리고 답답하리만치 보수적인 그런 사람. 그의 교향곡 1번을 20년이 걸려서 쓴 것을 보면, 그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그의 음악적 지향점도 역시 그렇다. 브람스가 살 당시 음악의 유행은 연극, 미술, 음악이 결합된 음악극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브람스는 신고전주의를 주장하며 고전음악으로 돌아갈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순수 음악만을 고집하였고 그 중에서도 부제가 없는 절대음악만을 작곡하였다. 그의 음악을 사람들은 한마디로 "그을린 은"이라고 표현한다. 그 말의 뜻처럼 그의 음악은 화려하고, 빛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차분하고 어둡다. 악기의 선택도 고음이 화려한 플릇, 오보, 바이올린 같은 악기보다는 무겁고 차분한 클라리넷이나, 혼, 첼로 같은 중음의 악기들에게 중요한 선율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차분히 듣고 있으면 그을린 은 속에 빛나는 정열이, 그리고 불타는 사랑이 감추어져 있다.

다시 사강의 소설로 돌아가 보자. 브람스를 좋아 하세요…. 그 다음 못 다한 얘기는 무엇일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저도 그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 이렇게 말하고 싶어 했던, 그 청년 시몽의 사랑은 이루어졌을까?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우리 기쁜 젊은 날, 우리의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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