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 <편집실 부국장대우>
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 놈에게 속지 마라. 일본은 일어나니 조선아, 조심하라!’ 8.15 광복을 맞이한 나흘 후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을 때 당시 유명한 만담가가 했던 유행어이다.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6박8일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미국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일본총리로서는 최초로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 실리콘밸리 등을 방문하며 미국과 신밀월시대를 열었다.
그는 새로운 미일방위지침(가이드라인)으로 자위대의 군사적 역할을 확대시켰으며, 홀로코스트 방문시 2차 대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과거 범죄 물 타기 행보를 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고 있던 종군위안부나 한반도 침략 등에 관해서는 일절 사과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종군위안부를 인신매매라는 표현으로 호도해 정부가 아닌 민간인의 책임으로 회피했다. 더구나 해외분쟁지역의 성폭력 피해여성 지원을 위해 유엔 여성기구에 내년부터 매년 수억 원의 돈을 낼 계획이라고 하며 입막음을 하기도 했다.
아베가 백악관을 방문한 4월28일은 종전 후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맺어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 날이다.
이 강화조약은 체결과정에서부터 전쟁피해 당사자인 한국의 참여가 배제 된 채 이루어졌으며 당연히 한국에 대한 배상 따윈 논의 되지도 않았다. 이 조약에서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조선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고 밝히며 독도를 명시하지 않아 지금껏 영토분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단초가 되었다.
이번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한.일 간의 독도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면 지금껏 지지를 해왔던 미국은 나 몰라라 뒷짐 지고 구경만하는 사태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더군다나 일본의 자위대는 미국을 등에 업고 전 세계 어디든 파병할 수 있게 됐으니 이젠 공식적으로 한반도에 자국민 보호 명목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일이다.
또한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열도에서 중.일 간 충돌이 일어날 경우 자위대는 한반도 공역의 진입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자위대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다.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과 동북아에서의 1인자 자리를 탈환하려는 일본의 욕망이 맞아 떨어져 한국은 중국과 미국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형국이 돼버렸다. 우리의 운명과 생존과 관련된 문제에 당사자인 주체가 빠져 버렸다. 우리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프레임에 빠져있는 동안 일본은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미국을 등에 업고 다시금 한반도에 발을 디딜 교두보를 다지고 있었다.
한국을 둘러싼 미일의 주고받기식 흥정은 역사가 깊다. 1905년 맺어진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구한말 대한제국을 집어삼키려는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식민통치를 인정하고, 미국은 일본이 한반도를 보호령으로 삼아 통치하는 것을 묵인하는 일종의 합의 각서이다. 36년 치욕스런 일제 강점기의 시작을 미국이 묵인 한 것이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자 종전 70주년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가 앞으로 있을 70주년 담화에 무라야마 총리처럼 과거사를 반성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여 줄지 또다시 분노를 자아내게 할 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