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애의 맛’(감독 김아론)의 단점을 끄집어내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이 영화를 보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개봉한 한석규·김혜수 주연 영화 ‘닥터 봉’(감독 이광훈)을 떠올렸다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에피소드를 나열하기만 하는 식의 스토리는 엉성하고, 코미디 80%에 감동 20%를 섞는 공식도 진부하다. 유머의 타율이 높지 않고, 심지어 야하지도 않다. 이래서 이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뜬금없는 섹스신은 또 어떻고.
날이 선 말들로 ‘연애의 맛’을 비난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은 이 영화를 인정하는 일이다. 그렇다. ‘연애의 맛’은 그저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다. 로맨틱 코미디의 기초 공사만 해놓고, 시덥지 않은 유머를 벽돌 삼아 무신경하게 쌓아올린 구조물이 ‘연애의 맛’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두고 왜 그것이 없느냐고 비판하는 일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어차피 이 영화를 볼 것이라면, 영화의 장점을 찾아 작은 만족을 느껴보는 게 더 현명한 일이다. 아무리 ‘정신 승리’라고 해도 그렇게 해야 정신적인 내상을 줄일 수 있다.
비뇨기과 전문의 ‘길신설’(강예원)은 서른이 넘도록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숙맥이다. 그런 그의 윗집에 까칠한 성격의 산부인과 의사 ‘왕성기’(오지호)가 이사 온다. 길신설은 휴일 아침부터 벽에 못을 박는 행동으로 왕성기와 충돌하고, 그가 새로 오픈한 병원이 자신과 같은 건물이라는 걸 알고 분개한다. 길신설과 왕성기는 시시각각 부딪히며 갈등한다.
‘연애의 맛’이 애초에 ‘500일의 썸머’ 같은 수준 높은 코미디가 아니라는 건 다 아는 사실. 영화의 성패는 결국 이 작품이 얼마나 관객을 웃길 수 있느냐에 달렸다. 이 지점에서 ‘연애의 맛’은 작은 성공을 거둔다. 안타깝지만, 이 소기의 성과는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다.
이 성과는 대개 강예원과 오지호 두 배우의 활약으로 이뤄낸 것이다. 두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연기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강예원은 도도해 보이는 외모에 순진함을 담아 러닝타임 내내 경쾌하게 연기하고, 오지호는 까칠해 보이는 표정에 특유의 찌질함을 녹여 강예원과 유쾌하게 호흡을 맞춘다. 강예원과 오지호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두 사람의 호흡 좋은 대사 리듬은 그리 재미있지 않은 영화의 유머도 웃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불쾌한 유머가 없다는 것 또한 이 영화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대개 한국형 섹스 코미디가 욕설과 화장실 유머를 곁들여 영화의 수준을 더 낮추는 데 일조하는 반면, ‘연애의 맛’의 유머는 수위 조절에 성공해 영화의 붕괴를 방어해낸다. 다만, 그러다 보니 웃음폭탄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 없는 건 작은 단점이다.
‘연애의 맛’은 장점이 없지 않지만, 단점도 많은 영화다. 결국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한 마디 더, 아무 생각 없이 2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후회할 영화는 아니다. 문제는 아무 생각이 없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손정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