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30시각] 우윤미 ㅣ바른 생활

2015-05-01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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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른 생활’을 기억할 것이다. 바른 생활은 저학년 때 배우는 교과과정으로 예의 범절이나 삶의 규범 등을 처음으로 접하고 익히기 위한 교육이다. 바른 생활의 내용은 참 재미있다. 옛날 이야기를 예로 들어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들을 배우고 삶의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할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준다. 어릴 때 나는 ‘슬기로운 생활’보다 ‘바른 생활’을 더 재미있게 공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바른 생활은 3학년으로 올라가면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내용이 무척 어려워진다. 그리고 국, 영, 수 위주의 공부가 이루어지다 보니 도덕 교육은 점차 자리를 잃어가게 된다. 그 후 중∙고등학교 때도 물론 ‘도덕’ 과정이 있지만 배워야 할 과목이 너무나 많아져 ‘도덕’은 그저 시험 과목 중 하나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고학년이 되면 ‘도덕’은 구체적인 생활 규범이 아닌 ‘철학’적 내용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이제 나의 얘기가 아닌 남의 얘기가 되는 것이다. 시험 때문에 공부해야 하는 남의 철학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 학생이 누가 있을까?

그래서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 도덕이 너무나 부족한 것 같다. 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하고 정치인은 뇌물을 받고 기업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사를 거의 매일 접한다. 이런 사건들이 만연하는 이유는 모두 어릴 때 단절된 도덕 교육의 폐해인 것만 같고 바르게 생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인 것만 같다. 국, 영, 수를 잘해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며 올바른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도덕이 부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저 그러려니 하고 쉽게 넘겨 버리는 경우가 많다. 성공한 사람이 부패했다고 해도 그의 성공에 가려 부패한 그의 모습은 보지 않고 칭송하거나 추앙하는 경우까지 있다. 더구나 도덕이 근간이 되어야 하는 법도 그들을 쉽게 용서해주고 있다는 것도 문제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사람들도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게 된다.


또한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바보’라거나 ‘착한 사람이 손해 본다’라는 말을 한다. 또 <흥부와 놀부전>에서 흥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자며 흥부를 비난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어쩌다가 착한 사람을 다르게 해석하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가가 본받고 싶은 사람의 순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사회가 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양심에 충실한 사람을 ‘실패자’나 ‘바보’로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 해도 바뀌지 말아야 할 ‘선’과 ‘도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지만 한강의 도덕을 잃었다. 돈과 명예에 집착한 삶은 우리가 배운 바른 생활의 내용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세상이 모두 돈만 외치는 이 시대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도덕 교육이 절실하다. 아주 구체적으로 정직과 성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것이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인지 어떻게 하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가르쳐 주는 바른 생활 교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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