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배수빈 ㅣ 주니어 올림픽

2015-04-3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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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가뭄 끝에 한밤에 촉촉히 내린 봄비가 채 마르지 않은 지난 주말 이른 아침, 디스트릭 전체 운동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식구가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주니어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매년 사월말에 열리는 이 운동회는 스쿨디스트릭 내의 7개 초등학교 4, 5, 6학년 1,600여명의 학생들이 트랙과 각종 운동경기 9개의 종목에서 선의의 기록 경쟁을 하며 하루종일 즐기는 커뮤니티 내의 가장 큰 축제 중의 하나이다.

모든 학생들이 아무런 제약없이3개의 종목에 참가할 수 있고 오직 학교별 400M 릴레이만이 참가자격이 제한되어 있는데, 75 야드 달리기를 서너번에 걸쳐 기록을 잰 후 가장 나쁜 기록과 좋은 기록을 제한 중간치로 개인 평균을 내어 학교별, 학년별, 성별로 제일 빠른 레드 팀, 그리고 화잇과 블루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팀이 형성되고 나면 봉사자로 나선 부모들에 의해 릴레이 교육이 시작되고 일주일에 두세번씩 근처 하이스쿨이나 칼리지에서 바톤터치와 팀 릴레이 연습을 한 후, 주니어 올림픽 당일 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육중한 압박감을 견디어 내며 팀과 학교를 위해 완주를 하는 것이다.


큰아이때부터 시작하여 어느덧 4년째 참가해 오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아이들의 성숙도가 놀랍고 대견하기만하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새벽부터 필드에 나가 경기의 룰을 배우고, 팀워크를 익혀가며 열심을 다한 아이들은 릴레이 당일이 되면 넘어지기도 하고 바톤을 떨어트리기도 하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같이 인원수가 작은 학교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릴레이 선수로 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많은 팀들이 꼴찌를 면하기 힘들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고 열심을 다하고 아이들도 부모들도 그 과정을 즐기고 성취에 자랑스러워 한다.

누군가 당일날 아프거나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각팀 보충인원으로 배정된 아이들은 아마도 결국은 경기에 참석하지 못하겠지만 한번도 연습을 거르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다.

삼십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죽을 힘을 다해 백미터를 뛴 후 엄마아빠와 김밥을 먹으며 올려다 보던 운동회날 서울의 가을 하늘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나의 아이들은 서울이 아닌 캘리포니아의 봄날을 이를 앙다물며 하던 턱걸이와, 혼신을 다한 30초 줄넘기, 그리고 함성과 열정이 불타오르던 릴레이의 땀냄새와 함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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