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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교 50년, 예수원‘홈커밍’

2015-04-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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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5-27일 PA 몬트로스서, 3대 토리 가문 역사와 사역 회고

한국 예수원(Jesus Abbey) 설립자인 대천덕 신부의 한국 사역 50주년을 기념하는 홈커밍 행사가 올 가을 펜실베니아주 몬트로스에서 열린다.
추석이 낀 주말인 9월25일(금)부터 27일(일)까지 대천덕 신부의 할아버지인 ‘R. A. Torrey’ 박사가 1908년에 세운 ‘몬트로스 바이블 컨퍼런스’에서 사흘간 열리는 홈커밍은 예수원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이 초청 대상이며 영어와 한국말로 진행된다.
한국 영성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던 대천덕 신부는 1957년 성공회 소속 성 미가엘 신학원 재건립을 위해 한국에 와 일하다 1964년 신학원을 사임하고 다음 해 강원도 태백에 예수원을 건립했다.
‘이상적인 신앙훈련은 신학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와 신자간의 교제로 체험하는 실험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대천덕 신부는 예수원을 통해 균형 잡힌 영성을 추구하는 기도훈련과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며 한국 교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대 ‘르우벤 아처 토리’ 박사는 독일 유학을 한 성경학자로, 무디 기념교회 등 여러교회에서 목회를 했고 세계를 순회하며 전도집회와 사경회를 인도해 ‘복음 전도자 토리’라고도 불렸다. 토리 박사가 1920년대의 평양대부흥 당시 한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1924년에는 한국에 와 설교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토리 2세 선교사는 프린스턴 신학교 졸업 후 미국 북장로교회의 파송을 받아 1913년 중국에 가 사역을 하다 중국이 공산화되자 미국으로 돌아왔다. 연락장교로 있던 중 오른 팔을 잃은 그는 1953년에 한국에 와 자신처럼 장애인이 된 많은 젊은이들을 전도하며 사회 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대천덕 신부는 자서전에서 “내 삶을 지배하는 자세 중 많은 부분은 수대에 걸쳐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루어 왔던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2002년 향년 84세로 생을 마친 대천덕 신부는 “이 땅에 한 평의 자리도 차지하지 않겠다”는 유언대로 유골이 예수원에 안치됐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성경이 말하는 경제 정의와 헨리 조지의 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한국의 토지 문제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설교를 남겨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르우벤 아처 토리’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세 사람이 회중교회, 장로회, 성공회 등 다른 교단에 각각 속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금요일인 25일 오후 2시부터 등록이 시작되며 다음 날부터 예배와 토리 가문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 예수원 방식의 성만찬, 친교 등 다양한 순서가 이어진다.
2인1실 숙소의 비용은 일인당 200달러(여섯 번의 식사 포함). 몬트로스 바이블 컨퍼런스 숙소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식사비만 따로 내면 된다.
2세 이하 무료, 3-6세 70달러, 7-12세 80달러, 13-18세 100달러 등 할인 혜택도 있다.
이메일(bentorrey@thefourthriver.org)로 예약한 후 Paypal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수표로 지불하는 경우 수신처를 ‘The Fourth River Project’로 하고 메모란에 ‘JA Homecoming’이라고 쓰면 된다.
주소 218 Locust Street,
Montrose, PA 18801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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