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가 잊고 사는 것

2015-04-1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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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상·하원에서 합동연설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미 의회가 공식초청한 아베의 미국 방문은 한인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그동안 역사왜곡과 역사 지우기에 앞장서 온 아베는 지난달 27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인신매매의 희생자, 고통과 아픔을 겪은 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아프다”고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처음으로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했다. 그런데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상당히 객관적으로 말했을 뿐, 일본이 그 주체라든지, 책임 있다는 식의 발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앙겔라 마르켈 독일총리는 2013년 8월 뮌헨 인근 옛 나치수용소를 찾아가 “슬프고 부끄럽다”며 사과했고 올 3월9일 일본을 방문해서는 “군 위안부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충고한 적도 있다.

독일은 3여년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공포와 고통을 준 나치 만행을 기회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사과하며 이는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 한다. 그런데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36년간 착취한 과오를 여전히 나 몰라라 한다. 간혹 일제하가 언젯적인데 아직도 과거에 사로잡혀 사느냐는 의견을 듣는다. 그렇다면 일제 36년간을 잠깐 되살려 보자.

동양척식회사는 대물림 해온 사유지를 느닷없이 국유지로 통고하고 소작료를 배정, 땅을 잃은 조선인들은 고향땅을 떠나 만주로 건너가야 했다. 굶주린 백성들은 소나무 새순, 진달래꽃, 송기, 칡뿌리가 양식이 되었다,

일본이 들여온 석유 호롱불, 광목, 눈깔사탕, 인력거, 고무신, 자전거는 생활상 변화를 가져오긴 했다지만 그 중 화투를 예로 들어보자.

화투는 쓰시마 출신 장사치들이 조선에 내왕하며 반일의식을 갖지 못하게 한 책략 중 하나로 의도적으로 보급한 것이다. 지금 고스톱은 한국민의 잔칫날이나 상갓집, 가정의 대소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놀이가 되어있다.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해 전개한 사업도 고리대금업과 매춘업이 주류다. 오늘날 룸살롱 밤문화의 뿌리는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인 통치를 위해 도입한 유곽과 공창이다.

민족말살정책으로 조선어교육을 폐지하고 창씨개명, 신사참배도 모자라 아예 민족정신을 마비시키고 조선인을 타락시키고자 한 이런 악풍습이 현재도 한국에 성행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고 산다.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경부선과 우정국도 그렇다. 조선의 발전을 위해 철도를 놓았다지만 조선의 농토에서 생산된 쌀과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질 좋은 생사를 일본으로 가져가자면 대량 교통수단이 필요했을 뿐이다. 쌀, 목화, 탄광에서 캐낸 금 등 온갖 물자들이 기차에 실려 군산항, 목포항, 부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운송되었다.


우체국을 창설한 것은 우체국을 통해 전국의 정보가 모두 한성으로 집결되니 한반도 모두가 그들 손바닥위에 놓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천년만년 조선을 자신의 식민지로 소유하고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려고 한 포석일 뿐이다.

한국인들은 정도 많고 한도 많지만, 하나의 특별한 이슈 앞에 흥분하고 확 관심이 확 몰렸다가 얼마 후면 잊어버리는 심리적 특성이 있다. 대한민국 건립과 더불어 청산되지 못한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음에도 부끄러운 과거는 잊자고 한다.

현재 뉴욕, 워싱턴을 비롯 전국의 한인시민단체들이 아베 총리 연설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고 29일 연설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요구를 위한 광고료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도 미·일간의 경제와 안보 협력관계가 우선이라고 해도 이번 기회에 아베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압박해야 한다. 그래서 36년간 나라를 빼앗겼던 오욕의 역사로 거덜 났던 한국의 자존심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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