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양현진 ㅣ남의 친절함

2015-04-0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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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단어 중에 ‘stranger’라는 영어 단어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다. ‘Stranger’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내가 이 단어의 의미를 현재 알고 있는 한국말로 번역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 정도는 알고 있지만, 이 두가지 표현은 무언가 나쁜, 혹 꼭 좋지만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stranger’들은 그저 내가 전혀 보지 않고 모르는, 친구와 가족 외에 ‘남’들이다. 남이라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이 없는 건 절대로 아니지 않은가. 난 이 사실이 참 묘하고 신기하다. 나의 행동이나 결정으로 인해 누군가의 하루가 더 밝아지거나 나빠질 수 있고, 또 반대로 남의 친절함으로 인해 내 일상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머릿속에 생생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외국에 있을 적이었다. 카페에서 공부를 마친 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교통비를 내기 위해 지갑을 찾았지만, 내 가방이나 주머니에도 없었다. 그 다음날 카페로 가서 점원에게 지갑에 대해 물어봤지만,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듯했다. 특히 외국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긴장감은 더 커져만 갔다. 신용카드, 학교 신분증, 현금 등 내게 가장 중요한 물건들을 한순간에 잃은 상태인데다, 그 다음주 학교와 여행을 가야 할 예정이었다.


별다른 소식을 받지 못한 채 2주를 보냈다. 다행히 홈스테이 가족에게 돈을 빌릴 수 있었고, 여행도 무사히 다녀왔다. 지갑은 서서히 포기하고 현금카드를 새로 받으려던 도중, 홈스테이 가족집에 경찰이 갑자기 찾아왔다. 혹시나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았나 싶어 잔뜩 겁먹은 마음으로 경찰 아저씨를 맞았지만,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잃어버린 지갑이었다! 기찻길에 버려져 있던 내 지갑을 찾은 기차 운전사가 경찰서로 반납하도록 자신의 아들을 보냈고, 지갑을 받은 경찰서 아저씨는 내 외국 주소를 모른 채 내 학교에 연락해서 이름을 통해 우리 홈스테이 주소를 찾은 셈이었다.

왕복 1시간 되는 거리를 운전해서 지갑을 건내주신 후 아저씨는 떠나셨고, 난 한동안 멍한 상태로 지갑을 들고 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의 합쳐진 노력으로 지갑은 집으로 오는 먼길을 무사히 건너왔다. 그리고 나는 이후로 나와 남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두번 다시 의심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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