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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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까지 불꽃 태우는 열정 인생, 음악 인생

2015-03-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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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로장로교회 성가대 지휘하며 노익장 과시하는 방은호 장로

방은호 전 코리안 콘서트 소사이어티 회장은 한국에 최초로 복음을 전한 아펜젤러 선교사를 직접 만났던 기억을 이렇게 회상했다.
“미국에 유학을 오기 위해 인터뷰를 하는데 아펜젤러 선교사가 직접 담당했습니다. 담배를 피우느냐고 묻기에 안 피운다고 했죠.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어요. 집에 돌아왔더니 아버님이 ‘예수님의 전인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대답을 해야 했다’고 그러시더군요. 아차 싶어서 그날 밤 다시 아펜젤러 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내가 대답을 잘못했다, 정정한다고 말하고 돌아왔죠.”
그런 적극성 때문일까. 방은호 청년은 감리교단이 주는 크루세이드 장학금(crusade scholarship)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때가 1948년이었다.
서울대 약대 1회 졸업생인 그는 미국에 온 다음 해 9월 일리노이 약대를 다시 졸업했다. 1958년 메릴랜드에서 약사 면허를 취득했고 여러 직장을 거쳐 타코마에서 2012년까지 약국을 경영했다.
은퇴할 때 나이가 한국 나이로 89세, 지금은 92세다.
그는 얼마 전 혼자 직접 운전해 뉴욕을 다녀왔다. 느긋하게 음악회도 보고, 식사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다음 날 새벽.
“그 정도는 아무 문제없어요. 700마일 거리의 내슈빌까지도 다녀온 적이 있는데요.”
약사이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1979년 코리안 콘서트 소사이어티를 설립했다. 2009년까지 회장을 맡았고 지금은 명예회장으로 있다. 30년 동안 이끌어온 코리안 콘서트 소사이어티를 통해 다수의 유망한 한인 음악인들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 가운데 하나다.
그들 중에는 워싱턴이 자랑하는 소프라노 유현아 씨가 있고 미국에 잘 알려진 리처드 용재 오닐 비올리스트도 있다.
언젠가는 워싱턴 서울대 동창회가 초청해 조수미 씨가 왔다. 방 회장의 집을 방문한 조 씨는 그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멋지게 한 곡을 선물했다.
젊은이들이 못 당하는 음악에 대한 사랑은 그가 장로로 있는 세계로장로교회에서 매주 목격된다. 한참 어린 성가대원들은 그의 몸으로 하는 지휘를 보며 저절로 감동을 받는다.
방 장로는 올해 부활절을 한국에서 맞게 됐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주최하는 ‘아펜젤러·스크랜터 모자 한국선교 130주년’ 행사에 아버지 방훈 목사를 대신해 초청 받았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기도 하는 이번 행사에 그는 특별한 선물을 들고 간다. 아펜젤러 선교사와 매클레이 선교사를 파송하여 실질적 한국 선교의 문을 연 존 가우처 박사의 흉상이다. 가우처 박사의 유족들도 다수 동행할 예정이다.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에 많은 빚을 졌어요. 그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한인 성도들이 텅텅 비어있는 미국교회들을 자주 방문해 위로하는 거예요. 필요하면 도움도 주고.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잖아요?”
목사의 자녀로 성장한 탓에 PK(Preacher’s Kid)에 대한 애정도 크다. 이 아이들을 돌보는 단체가 하나 생겼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어려운 교회의 목회자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근자에 몸이 아파서 33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아 식사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 그런 탓에 지금 뭔가를 또 시작할 수는 없겠지만 대신 기도를 열심히 한다. 취침 전 기도는 중요한 일과가 됐고 누구든 기도를 부탁하면 빠트리지 않고 기도해주려 노력한다.
그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배려하려는 마음의 여유가 건강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 한다”며 동안의 얼굴로 활짝 웃었다.
방 장로는 이번에 한국에 가면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계원 씨를 만나 회포를 풀 생각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수학과를 중퇴한 1년 선배다.<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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