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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현지 목회자 훈련 절실”

2015-03-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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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바울 선교사, 워싱턴서 신유집회 인도

하나님은 김바울 목사(사진)의 삶의 방향을 몇 번이나, 그것도 ‘강권적’으로 틀어놓으셨다. 러시아어를 한마디도 모르던 1991년 러시아 선교사로 부름 받았던 일은 웬만큼 알려진 일화다.
러시아 여성합창단을 이끌고 세계를 돌며 복음을 전했고 모스크바의 교회를 잘 성장시켰지만 15년이 지난 2006년 김 목사의 사역은 뜻하지 않게 다시 큰 전환을 맞는다. 뉴욕에 왔다 몸에 임파선암이 있다는 진단을 받으면서다.
“억울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해왔는데 키모와 방사선 치료를 동시에 받아도 1년을 더 살기 어렵다니요.”
한 때 절망도 했다. 그러다 마음을 바꿨다. “병을 고치려 애쓰느니 사역 현장에서 일하다 죽자.” 기도하고, 걷는 운동에 힘쓰며, 채식만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김 목사는 완전히 회복됐다. 사역도 한 교회에 집중하기보다 러시아의 곳곳을 다니며 치유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적’ 성격을 더 많이 갖게 됐다.
“하나님은 저를 낫게 하신 후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일에 저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저는 의사도 아니고 아무런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한 저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고 치유하시는 하나님 능력이 전파되니 감사한 일이죠.”
김 목사가 태어날 때 어머니는 서원 기도를 6년 동안 하신 뒤였다. 목사로 바치겠다고. 신학교에 갔지만 음악이 좋아 혼자 공부해 서울음대 작곡과에 입학했다. 서울여자대학 음대교수가 됐고 합창단을 이끌고 해외 연주를 했다.
1971년 미국 신학교 교수로 초청 받으며 이민 생활이 시작됐다. 사업 수완이 있어서 운전학교를 하며 돈도 잘 벌었다. 그러다 당한 교통사고는 그를 정신 번쩍 들게 했다. “이렇게 죽으면 지옥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도, 봉사, 헌금 많이 했어도 다 소용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기도 하다 방언을 받고난 뒤 다시 신학교에 들어갔다. 목사 안수는 조용기 목사의 장모인 최자실 목사에게 받았고 최 목사의 요청으로 워싱턴에서 최초로 한인 순복음교회를 개척했다. 그 때가 1977년이었다.
이후 워싱턴의 세계선교교회, 뉴욕의 우드사이드교회를 거쳐 1991년 막 개방된 러시아로 가게 된다. 그 때도 다른 젊은 목사를 보내려 했는데 희망자가 없었다. 결국 ‘두려운 마음’을 품고, ‘공든 탑’을 다 포기하고 김 목사가 떠나야 했다.
러시아에서 쌓은 15년간의 공든 탑도 이제는 내려놨다. 김 목사는 후임자에게 러시아교회를 맡기고 지방을 다니며 신유 사역과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집회를 하면 처음엔 몇 명 모이지 않다가 기적을 체험하면 숫자는 크게 불어난다. 현지 목회자 훈련도 중요한 사역이다.
“러시아 정교회가 개신교회를 굉장히 핍박합니다. 게다가 러시아 교회는 기복신앙에 치우쳐 진정한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선교사 비자로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도 더욱 선교를 힘들게 합니다.”
김 목사가 전하는 최근 러시아의 실태다. 김 목사도 이젠 한 번에 오래 체류할 수 없게 됐다. 과거보다 미국에 자주 오게 된 저간에는 그런 사정이 있다.
김 목사는 “러시아에 교회와 성도는 많아도 복음이 없다”며 “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부터 세계선교교회에서 시작된 신유집회는 14일(토) 오후 3시, 15일(일) 오후 7시에도 이어진다.
문의 (703)615-7783, (718)757-4944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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