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배수빈 ㅣ 따뜻한 겨울에 관한 단상

2015-02-2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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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프레지던트 데이 휴일이 있던 일명 스키위크로 불리는 아이들 겨울방학에 유타주에 있는 파크시티에 가서 스키를 타고왔다.

지난 삼사년간의 가뭄에 연이어 올해도 계속되는 따뜻하기만 한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하와이안 익스프레스라고 불리우는 따뜻한 폭풍을 몰고와 오히려 산정상의 스노우팩까지 쓸어내려 버려 일월 현재 연평균의 12퍼센트 정도에만 머물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타호가 아닌 유타로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2년 동계올림픽을 주최했던 솔트레익 시티의 명성은 어디에 가고 타호의 스쿼 벨리와 별반 다를바 없는황토색이 만연한 산들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역주민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따뜻한 겨울은 처음이라며 이상기온을 탓했고 지난 십여년간 유타에 충성스럽게 매년 스키여행을 다니던 친구들도 어이가 없어하며 미안함을 표했다.

그래도 타호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스스로들을 위로하며 눈만드는 기계가 열심히 뽑아낸 눈 덮인 산자락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세번째 날 아침 기온이 좀 떨어지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리프트를 몇번에 나누어 타며 산정상까지 올라가서 내려오는 중에 4학년짜리 딸내미가 여기에는 진짜 눈이 있다고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산등성이를 부드럽게 타고내려오며 아주 즐거워하였다.

동계올림픽 사상 가장 따뜻했던 지난해 소치 올림픽 이후 발표된 보고서에 의하면 이번세기 말이 되면 미국 서부지방의 모든 산에는 스노우팩이 완전히 사라질 전망이라고 한다.

내 아이들과 손주들이 살아갈 이곳은 이제 타호 산 정상에 올라가도, 휘슬러 정상엘 올라가도 그 새하얗고 솜털같이 부드러운 진짜 눈구경을 못할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중동지방 두바이에는 인공 실내 스키장이 있다 하던데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스키를 배워가는 세상을 살게 되려는건 아닌지, 대체로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살고있다고 자부하지만 이 따뜻한 겨울은 정말 반갑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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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빈씨는 하이테크 회사 전산실에서 근무하면서 두아이를 키우고 있는 일하는 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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