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자기고] 임남희 ㅣ 상실의 시대를 넘어 희망을...

2015-02-2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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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청주에서 발생한 일명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망사건은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유난히 착하고 배려심이 깊었던 그를 잃은 가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뺑소니범을 꼭 잡아 합당한 죄값을 치르게 해 달라고… 생떼 같은 자식을 잃고 비탄에 빠진 그의 모습에서 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떠올렸다.

세월호 사건 발생 300일이 지났고 곧 1주기가 된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지, 온 국민이 충격과 분노의 시간을 보낸 지 벌써 1년. 그간 유가족들은 자식을 잃은 극한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아이들이 죽어간 이유를 밝히기 위해 싸워왔다. 하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진실 규명의 길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죽음의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이고, 둘째는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한 당사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다. ‘크림빵 아빠’ 사고는 다행히 범인의 자수로 일단락되었다. 그는 범행을 모두 자백하고, 피해자 부모에게 진심으로 반성하며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고질적 비리와 시스템의 문제, 사고 대응 체제의 부재 등 문제가 너무나 포괄적이고 뿌리깊다.


세월호 이야기는 이제 너무 지겹다고, 듣고 싶지 않다고 외면하거나 실제로 잊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 또한 이제 그만하고 싶다. 이곳에서 서명을 받고 시위에도 참가해 봤지만, 한국에서 들려 오는 소식은 실망스럽기만 했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기치 아래, 이제라도 사회의 환부를 도려내고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일조하겠다며 모였던 이들도 상실감과 무력감으로 대부분 흩어져 버렸다.

우리는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나친 배금주의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을 잃었고, 자본과 경제의 논리 앞에서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참다운 가치를 잃어 버렸고,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재의 행복을 잃었다. 그리고, 우리는 1년 전 희망의 침몰을 목격했다. 하지만, 이대로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세월호 이야기가 너무 지겹고 때론 힘들지만,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가 상실의 시대를 넘어 희망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지금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들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 건설이다. 그것이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에 미주지역 ‘세월호를 잊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세사모)’은 미주 동포사회의 지속적 관심과 지지를 촉구하기 위해 3월 초 세월호 유가족 강연회를 개최한다. 북가주, LA, 뉴욕, 워싱턴 DC 등 미국 10개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는 이 행사를 위해 각 지역 세사모 회원들이 홍보와 기금 마련에 나섰다.

이번 강연회를 통해 유가족들과 함께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세월호 사건은 잊혀진 사건이 아니라, 제대로 해결되어 역사의 한 페이지에 교훈으로 남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한국에선 각종 안전 사고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과거로부터,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겐 발전도 미래도 없다. 이 문제를 극복하고 일어섰을 때 한국 사회는 진정 ‘세월호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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