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수업을 같이 듣는 동생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내가 보기엔, 그 친구는 침착하게 스토리를 설명하고 자기의 주장까지 덧붙여 마무리짓고 자리로 들어가 앉았지만, 이 친구가 나에게 보낸 문자는 내가 본 모습과는 달랐다.
친구의 언어를 그래도 빌리자면 “그날 엄청 떨렸는데, 언니가 맨 앞에서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지구가 멸망해도 날 믿어줄 사람이구나를 느낄 만큼 반짝반짝 빛나고 힘이 되는 진실성이 담긴 눈빛이었어. 언니한테는 별거 아닐 수 있는데, 난 너무 감동받았어. 앞에서 누가 그렇게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발표하는 사람은 힘이 나거든. 그때 속으로 무얼 느꼈냐면. ‘역시 무대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무대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실력을 겸비했구나’ 라고 확대해석하면서 언니의 숨겨진 능력에 감탄했어.”
난 무대의 공포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오디션을 볼 때면, 교수님 몇 분만 앞에 계셔도, 심장이 뛰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내가 외웠던 대사를 숨도 쉬지 않고 쏟아낸다.
무대에 설 땐 수 많은 리허설을 해도,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대사를 틀릴 때도 있으니, 오죽하면 연출가는, 처음보는 관객은 대사를 틀려도 모른다며, 무대에서 틀리지 않은 척 침착하게 넘어가라고 할까? 내가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말 한마디가 신중한 대통령의 연설이나 발표를 즐겨보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그 무대의 무서움을 아니까. 그래서 수업중에 난 그 친구를 “이해”하고 ‘의도적으로’ 그런 눈빛을 보냈다.
우리 모두 그렇지 아니한가? 이 세상 쉬운 직업 하나 없다. 좋은 직장은 좋은 직장대로 힘들고, 사람들이 마다하는 직장은 또 그 나름대로 힘들다. 그 어려움을 알기에 내 자식에게는 나와는 다른 편한 직장 얻으라는 부모님의 마음 또한 안다.
하지만 왜 그 ‘앎’을 같은 분야에 있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꾸는 건 어려운 것일까? 앉아만 있어도 힘든 비행중에, 잠 못자고 계속 서비스를 해야 하는 스튜어디스들은 얼마나 힘들까?
‘이해’ 하고, 늦은 시간 남자친구 만나고 싶을텐데, 성적 잘 받으려고 교수님과 술 한잔 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성희롱 대신 학생들의 열정을 이해했더라면… 최근에 많은 이슈가 되고 있는 회사에서 ‘갑을 횡포’ 같은 사건은 생기지 않을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