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다 보면 흔히 접하는 질문 중 하나가 “꼭 약을 먹어야 하나요?" 이다. 특히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을 가진 분들에서 자주 대하게 된다. 이들 질환은 엄밀히 따지면 병이라기보다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다시 말해 폐렴이나 종양처럼 질병에 이환되었느냐 아니냐 하는 O·X 형태가 아니라 수치가 높거나 낮거나 하는 정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권위 있는 학회에서 정해지고 시간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 고혈압의 정의는 160/100 이상이었으나 현재는 140/90 이상이며 당뇨병은 공복 때 140 이상으로 정의했으나 현재는 126 이상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미래에는 더욱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렇게 진단기준이 점점 낮아짐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환자로 편입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진단기준이 점점 엄격해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병리학, 예방의학 및 통계의학의 발달로 병의 원인, 합병증, 예방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으며 보다 엄격한 진단기준을 적용함으로써 합병증의 위험도를 낮추고 보다 건강한 삶을 영위함을 위함이다.
특히 이들 세 가지 만성질환은 성인병이라고도 별칭하며 심장, 혈관, 신장, 눈 등의 주요 표적장기에 영향을 미쳐서 심부전, 신부전, 관상동맥 질환, 안질환 등의 합병증 위험을 높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분들이 약 복용을 꺼리는 이유는 첫째 약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걱정, 둘째 일단 시작하면 평생 복용해야 한다는 부담감, 마지막으로 본인이 환자가 되었다는 부정적 인식과 함께 운동, 식이요법, 체중감량 등으로 조절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일 것이다.
여기서 필자 의견을 말해 볼까 한다.
만약 질환의 정도가 경하며(초기) 오랫동안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이나 생활방식 등을 고수해 왔다면 수개월 정도 개선된 식생활 습관을 시도해 본 후 다시 검사하여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면에 초기가 아니라 진전된 상태이거나, 이미 건강한 생활습관을 해오고 있다면 저용량부터 시작해서 약 복용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약물 부작용이란 발생 가능한 현상이며 대다수의 약에서 대부분의 환자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체가 약물에 적응하면서 부작용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부작용이 관찰되면 다른 작용 기전을 가진 약들로 교체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이들 만성질환의 약들은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평생 복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병의 경과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 질환은 질병이라기보다는 수치의 높거나 또는 낮은 정도의 문제이므로 ‘나는 환자다’라는 불필요한 부정적 생각보다는 나 자신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합병증을 예방한다는 긍정적 시각을 가지는 것이 현명한 자세라고 볼 수 있다.
부언하자면, 일반적으로 연령에 따라서 이들 질환의 치료 목표(goal)에 차이가 있다. 즉 고령에서는 젊은층에 비해 목표를 좀 덜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좋으며, 고지혈증이나 고혈압은 당뇨병에 비해 좀 더 여유를 갖고 관대하게 진단기준을 잡는 것이 합병증의 빈도를 줄이면서도 약물 부작용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동현 내과 (213)739-8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