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우윤미 ㅣ 한국어는 어디에

2015-01-12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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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사이다. 10년 동안 많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오면서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참 고맙고 신기했다.

가끔 어려운 한국어를 배우는 그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국어에는 영어 단어가 많아서 배우기가 참 쉬워요"라고 말할 때가 있다.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씁쓸한 것을 감출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정말로 우리나라 말이 이제는 영어로 뒤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은 미국이니까 "뭐, 영어 쓸 수도 있지"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에 가 보면 한국어가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어떤 옷을 파는 사이트에서 ‘카모플라주’라는 말을 보고 뭔가 해서 들어가 보니 ‘camouflage’를 한글로 적어 놓은 것이었다. 아무리 다르게 보이고 싶었다고 해도 ‘카모플라주’를 알아듣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더 큰 문제는 이것보다 더 심한 변화가 이미 우리 생활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조차도 덮개보다는 커버가 겉옷이나 웃옷보다는 재킷과 코트를 더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매년 한글날이 되면 방송사나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내 놓는 ‘한국어 파괴...’ 어쩌고저쩌고하는 기사들은 정말 딱 하루짜리 기사가 되기 일쑤이다.

나는 지금도 어느 매체의 리빙/푸드 면을 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삶’이라고 하면 품위가 떨어지고 ‘먹거리’라고 하면 맛이 없어지는 걸까? 이도 합치면 딱 네 글자인데...

이렇게 영어를 함부로 쓰는 것은 계층을 나누는 또 하나의 잣대가 될 수도 있다. 옛날에 양반들은 한자를 최대한 많이 써서 평민들과 차이를 두려고 했었다.

누구나 아는 한국어 대신 영어를 써서 모르는 사람이 쉬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 역시 외국어교육을 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을 가르는 벽을 만들어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나 우리의 것을 버려 가면서까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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