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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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 가도가도 끝이 없는 ‘신비의 섬’

2014-12-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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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센 파도·안개 휩싸인 ‘천연 요새’

“산아 산아 회룡산아 눈이 오면 백두산아 비가 오면 장내산아 바람불면 회룡산아.

천산 하산 넘어가면 부모형제 보련마는 원수로다 원수로다 산과 날이 원수로다"


가거도에서 구전되어 오는 민요의 한 구절이다. 험준한 산들 너머에 있는 부모형제가 애타게 보고 싶지만 산과 날(날씨)이 쉽사리 허락하지 않아 뜻을 이룰 수 없음을 한탄하는 노래다. 외딴섬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환경은 매우 극복하기 힘든 난관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민요에서 엿볼 수 있듯이, 가거도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억겁의 신비를 간직한 채외롭게 떠 있는 원시의 섬이다. 안개와 구름에 휩싸인 거대한 산봉우리가 짙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 형국은 웅장하다 못해 장엄하기까지하다. 외딴섬을 포위하듯 에워싼 채 몰려드는 거센 파도는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 천연의 성곽이나 요새인 양 기세등등하다.

우리 땅 가장 서남쪽에 처박혀 있는 가거도는 이렇듯 비장한 느낌마저 주는 고독한 섬이다. 서울보다 중국대륙에서 더 가까운 멀고 먼 홀로 섬이다. 그래서 옛 나라님들조차 유배지로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가거도는 서해에서 가장 높은 독실산을 품었다. 그 험준한 산봉우리에서 길게 뻗은 산줄기, 독실산맥이 가거도의 골격을 이룬다. 해발 639미터라고 얕보면 안 된다. 바다 위로 곧바로 솟은 외딴섬의 산악인지라 매우 높고 가파르다. 더욱이 가거도는 산림지대가 96%를 차지하므로 섬 전체가 산이나 매 한가지다. 안개와 구름을 껴안고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위태롭게 두둥실 떠다니는 산을 상상해 보았는가? 가거도는 그렇게 신비한 몸짓으로 먼 바다를 헤쳐 온 뭍의 나그네를 품에 안는다.


■ 신석기부터 사람들 살았던 아름다운 섬

이 섬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1580년 무렵 서씨가 들어왔다고 하나 확실한 내력은 알 수 없고 1800년께 임씨가 정착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하지만 조개무지에서 발견된 토기로 미루어 선사시대인 신석기때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968년 서울대학교 인류학(한상복교수) 조사팀은 가거도 북단 등대 서쪽 경사면에서 조개무지 패총(貝塚)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신석기 말기유적으로 추정했으나 최근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 조각과 눌러찍기 무늬토기(押引文土器) 조각이 출토됨으로써 신석기 중기나 전기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덧무늬토기는 기원전 5000년 무렵, 눌러찍기 무늬토기는 기원전 4000~2000년 무렵에 사용된 토기다.

가거도는 본디 머나 먼 변방의 섬이라 하여 갓갓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인 가가도(嘉佳島)를 거쳐 1896년 가거도(可居島)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왜 이리도 먼 낙도를 ‘사람이 살 만한 섬’이라고 했을까? 역설적으로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먼 곳이라는 뜻도 담겨 있는 듯하지만, 일단 들어오면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사라질 만큼 풍광이 빼어난 까닭은 아닐까?가거도 주민들은 이 섬을 소흑산도라고 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옳지 않다.

1678년 우수영 수군을 파견했던 우이도를 흑산진이라 일컬은 적이 있다.

이때 우이도를 흑산도와 구별하기 위해 소흑산도라고 하고 흑산도를 대흑산도라고 불렀다. 그 후 일제 강점기때 행정구역을 변경하면서 가거도를소흑산도로 지도에 잘못 표기해 와전되었던 것.


■ 섬등반도 산책길과 해상 일주관광일품

넓이 9.18㎢, 해안선 길이 22㎞에 이르고 400여 주민이 사는 이 섬의 아름다움은 가거도 8경으로 대변할 수 있다. 독실산 정상 조망, 회룡산과 장군바위, 돛단바위와 기둥바위, 섬등반도 절벽과 망부석, 구절골 앵화(살구꽃)와 빈주바위, 소등 일출과 망향바위, 남문과 해상 터널, 구굴도 전경 등이 그것이다.

가거도의 진면목을 살펴보려면 2시간 남짓한 해상 일주관광과 왕복 4시간쯤 걸리는 독실산 등산을 두루 즐기는 것이 좋다. 2구인 항리마을과 섬등반도 트레킹도 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명품 산책길이다.

가거도는 우리 땅 으뜸의 생태계 보고로도 소중하다. 우리나라 후박나무약재 생산량의 70%를 차지할 만큼 후박나무가 빽빽한 가운데 600여종의 자생식물이 분포하며 희귀 약초도 30여종이나 된다. 바다에는 70여종의 어류와 180종의 해초류가 자란다.

가거도 북쪽에는 부속 섬인 구굴도(국흘도, 국클도)가 있다. 바닷새 울음소리가 구굴구굴 또는 구클구클 들린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실제로 이 무인도에는 20여종의 바닷새들이 서식한다. 특히 바다제비, 뿔쇠오리, 슴새 등 희귀 조류 번식지로 소중해 1984년 8월 천연기념물 341호로 지정되었다. 이렇듯 가거도는 생태계의 보물섬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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