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최문규 ㅣ 고 이철수아우님 영전에
2014-12-11 (목) 12:00:00
내가 이철수 라는 이름을 처음들어본게 지금으로부터 37년전으로 기억된다. 어느날 내가 경영하는 작은 카페에 왠 어여쁜 아가씨가 찾아와 나와 이야기를나누자고 해서 나는 그녀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대뜸 이철수라는 한국사람이 지금 억울하게 사람을 죽였다는 죄명으로 옥살이를 한다고 하며 같이 구명운동을 하자고 제의했다.
나는 그때 내형편이 갓 이민와 큰애까지 태어난 상태라 직접 참여 하지 못하고 작은 액수의 모금에만 참여했고 그후 그들은 자주 우리 카페에 모여 회의를 했고 그때 나를 찾아왔던 그여자 분은 훗날 이 사건을 계기로 변호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일본 여자가 주동이 되어 많은 중국계, 일본계, 한국사람 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처절한 법정투쟁과 모금운동으로 구속수감 된지 10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철수는 1973년 차이나타운에서 임이택 갱두목을 권총으로 살해했다는 죄명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에 1978년 유색인종 혐오자인 갱죄수와 또다시 맞서 싸우다 결국 살인을 하게되어 1급 사형수가 되어 샌 호아킨 형무소에서 집행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런 그를 우리 한국사람의 힘으로만이 아닌 아시아인들이 하나가 되어 그를 지옥에서 구출하게 되었다. 이철수는 석방후 불교에 귀의하여 안정을 찾아가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고도 기적으로 살아나 불굴의 투지로 우리를 또한번 놀라게 했다.
나는 철수아우와 많은 추억이 있다. 화상투병중 철수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을때 내손으로 어머님의 유골을 샌프란시스코 바닷가에 뿌려드리며 하염없이 눈물짓던 생각이난다. 이제 철수아우는 그렇게 그리던 어머니의 품속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제 아무리 못가게 매달려도 그는우리를 뒤로 이 한많은 세상을 떠나갔다. 11살에 이민와 21살부터 감옥에서의 10년이란 세월은 그에게 그 어떤 말로도 위로 될 수가 없다.
오늘 그를 보내는 마지막 고별장례식이 여래사 법당에서 있었다. 40년전에 모였던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그를 추모하며 나만이 아닌 또다른 민족이 하나되어 출소 후 그를 좀 더 보살펴 주지 못한 아쉬움으로 우리마음을 더욱 슬프게 했다. 그는 말년에 외로움과 병마와 싸워가며 마지막 의사의 수술권유도 뿌리치며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갔다.
철수아우님! 용서하시구려. 그대가 힘들고 어려울때 그대옆을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오. 이제 모든 짐 내려놓으시고 편히 떠나가시구려. 그리고 우리 다음생에서 만날때에는 그대와 친형제로 다시태어나 우애있는 형제로 다시 만납시다.
철수는 떠나면서 우리 아시안들을 또 한번 뭉치게 해주었고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떠나 갔습니다. 철수 아우님 고마웠습니다.
2014년 12월 9일 장례식을 마치고
불교인 최 문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