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숨 날숨 훠이훠이~ 산복도로 168계단
▶ 예술의 경지에 오른 지혜와 배려의 공간활용
부산은 산이다. 웬만큼 길눈이 밝은 사람도 부산에선 길 찾기가 쉽지 않다. 산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도시고, 터널 하나 지나면 또 다른 마을이다. 평지에도 직각으로 교차하는 사거리가 드물다. 부산역 앞을 가로지르는 중앙대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구불구불 산길이다. 그리고 그 산길은 대개 산복도로에 닿아 있다. 배 복자(腹)를 사용하지만 풀어 쓰면 산중턱이고 산허리다. 그렇게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산허리까지 이어진 모습이 부산의 대표적 풍경이고, 360만 부산시민의 1/3은 이래저래 그 산동네에기대어 살고 있다. 가난의 흔적을 굳이 들추고 싶지 않아 외면해 왔던 산복도로 주변마을들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는 부산사람의 포용성]
39, 168, 189, 192…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산동네로 오르는 계단에 습관적으로 붙은 숫자다. 지금도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이 출근하고 시장에 가고 학교에 간다. 동구 범일동에서 서구 서대신동에 이르는 원도심 산복도로는 1964년에 개설했지만, 산동네가 만들어진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다. 8.15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부산은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며 인구가 급증했다. 평지가 좁아 자연스레 산기슭에 판자촌이 형성된 게 지금의 모습이다. 지붕은 ‘루삥에 꼴탕칠’ (천막에 아스팔트유제를 칠하는 것)을 해서 비를 막았다. 수도는 마을에 드문드문 있어서 물 한 양동이 받으려면 끝도 없이 ‘나래비’(줄서기)를 서야 했다. 화장실 있는 집도 드물어 대부분 공동화장실을 사용했다.
아랫집 지붕과 높이가 같은 좁은 도로를 ‘길다방’삼아 시간을 보내던 동구 초량동 할머니들이 들려준 그시절 얘기다. 모두가 어렵고 가난했지만, 동병상련의 아픔을 서로 보듬고 감싸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돼버린 ‘우리가 남이가?’는 역설적이게도 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을 너그럽게 끌어안은 부산시민의 포용력에서 비롯한 말이라는 게 마을 해설사의 설명이다.
원도심 산복도로 이야기는 ‘이바구공작소’에서 시작한다. 부산역과 부산항으로 들어온 외지인들이 가장 먼저 마을을 형성한 중구 영주동, 동구 초량동과 수정동 산복도로 주변에 흩어진 이야기 거리를 모아 연결하는 곳이다. 일종의 산복도로 생활사 박물관인 셈이다. 이곳에선 부산고 뒤로 이어지는 산복도로와 마을을 측면에서 조망할 수 있다. 이바구공작소 바로 아래 골목 왼쪽편엔 ‘장기려 더 나눔’ 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부산에서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한 장기려 박사 기념관이자 주민들의 쉼터다.
반대편 길로 조금 더 가서 왼편 아래 골목은 사다리처럼 수직에 가까운 계단이다. ‘눈물의 168계단’이다.
젊은 사람도 한번에 오르기 어려울만큼 가파르기도 하지만 ‘눈물의’ 사연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항에 배가 들어오면 선착순으로 주는 일감을 얻으려는 지게꾼들이 서로 다투며 내려가다가 넘어지고 엎어져 일감도 얻지 못하고 다치기만 했다는 곳이다. 아파서 울고 서러워서 또 울었던 눈물의 계단이다.
아래서부터 37계단을 오른 후 오른쪽 골목으로 방향을 틀면 ‘김민부 전망대’다. 김민부를 모르는 사람도 ‘일출봉에 해뜨거든 날 불러주오/월출봉에 달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쓴 작사가라면 고개를 끄덕인다.
부산역이 코앞에 내려다보이는 노천카페는 여유 있게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다.
산복도로의 부산컴퓨터과학고 버스정류소에는 빨간 우체통이 2개 있다. 승강장 발 아래 건물이 ‘유치환의 우체통’이다. 부산 경남여고에서 2차례 교장으로 재직하고 동구에서 생을 마감한 청마 유치환을 추억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엽서를 사서 부치면 1년후 배달해 준다. 빨간 우체동이 있는전망대에선 부산역 뒤편으로 푸른바다가 펼쳐지고, 최근 개통한 부산항 대교가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원도심 산복도로 이야기는 빨간우체통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이동해 게스트하우스를 겸하고 있는 ‘까꼬막’ 종합체험센터를 둘러보고 ‘천지빼까리’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까꼬막’은 산등성이, ‘ 천지빼까리’는 사방에 널려서 아주 흔하다는 뜻의 부산 말이다.
산복도로 산동네에는 소소하게 사진을 찍고 싶은 장면이 곳곳에 숨어있다. 이름난 장소만이 아니라 골목마다 배어있는 산복도로 사람들의 지혜를 카메라에 담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느 집에서 내려다 보든지 탁 트이고 하루 종일 해가 드는 구조다.
일조권과 조망권으로 법정다툼까지 가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높게 지을만큼 여유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일 테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산복도로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가 돋보이는 구조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기술은 단언컨대 산복도로 사람들을 따라갈 자가 없다. 옥상마다 화분 하나 없는 집을 찾기 힘들다. 대형 목욕통에서부터 작은 화분까지 크기와 모양도 다양하다. 더러 꽃을 심은 화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열무 상추 배추 파 등 매일 밥상에 오르는 채소다. 어려운 시절 반찬값이라도 아껴보려는 지혜가 지금껏 고스란히 남았다. 지붕뿐만이 아니다. 방문으로 들어가는 좁은 계단에도, 한두 사람 겨우 비켜갈 만한 좁은 골목에도 부추 고추가 싱싱하다.
도로의 안전 턱 사이도 꼭 맞는 화분으로 빈틈을 메웠고, 바람에 날아갈까 엉성한 앞집 지붕에도 열무 상자를 얹었다. 그것도 모자라 집 벽을따라 좁고 길게 텃밭을 만들고 채소를 가꾸는 모습은 공간예술에 가깝다. 요즘 유행하는 도시텃밭을 산복도로 사람들은 그 옛날부터 실천하고 있었다.
카메라 하나 메고 산복도로 여행에 나선다면 닥밭골 벽화마을과 감천문화마을이 제격이다. 서구 동대신동 대신여중 뒤편 닥밭골은 골목마다 특색 있는 벽화로 가득하다. 첫번째 벽화골목은 ‘한 계단 들숨/두 계단날숨/삼십구 계단 훠이훠이’ 동네 주민의 자작시로 시작한다. 안도현의 ‘모퉁이’를 지나면 다음 작품은 ‘좌천명 우외수’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노천명의 ‘별을 쳐다보며’와 이외수의 ‘살아간다는 것은’이 나란히 붙어있다. 골목 시화전에 온 분위기다. 어떤 골목은 이제는 모두 떠나버린 아이들 차지고, 어떤 골목은 힘든 시절 다 보내고 환한 웃음을 머금은 동네 어르신들 차지다. 마을 한가운데쯤 우물 터엔 빨래하는 아낙과 멱감는 아이들 그림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마을 중턱 초현경로당에서 산복도로로 오르는 계단의 글귀가 압권이다. ‘물-인간의 본성/돌-인간의 고집’ 등 사물을 인간의 성정에 비유한 글귀가 30여 계단 죽 이어진다.
산복도로 위로는 더 가파른 계단이 꽃무늬로 장식돼 있다. 이른바 소망계단이다.
마을 아래서 이어지는 계단 사이사이로 난 골목의 높이가 일정하다.
단층건물들이 모여 거대한 고층빌딩을 이룬 꼴이다. 마을 정상의 전망대에서 보면 감천항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이어지는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조금 내려와 버스정류장에 서면 상자모양의 집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파스텔 톤 컬러로 허술함을 감춘 집이며, 여러 장식으로 모양을 낸 카페가 군데군데 들어서 동네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 여행 수첩
●산복도로 주택은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공간이다. 여행자가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사항이다. 집안을 들여다 보거나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행동을 삼가는 것은 기본 에티켓이다.
●원도심 산복도로 영주동과 초량동은 산복도로 버스투어를 이용하면 해설도 듣고 체험행사에 참여할 수도 있다. 매주 토요일 3회, 일요일 2회 부산역광장에서 출발하는 버스투어는 부산마을협동경제플랫폼 홈페이지(www.woorimaeul.or.kr)에서 예약할 수 있다. 개별여행자는 부산역 앞에서 출발하는 333번 버스를 타면 편리하다. 원도심 산복도로만 운행하는 노선이다.
●닥밭골 벽화마을을은 부산지하철 1호선 동대신역 5번 출구에서 부산서여고 방향으로 도보로 10여분거리다. 서여고를 지나 대신여중 바로 뒷마을이다.
●감천문화마을은 지하철역에서 걸어가기는 먼 거리다. 지하철1호선 토성역 6번 출구나 괴정역 6번 출구에서 마을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