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박수진 ㅣ 아이와 어른 사이
2014-10-14 (화) 12:00:00
8학년 딸아이의 방문이 갑자기 닫힌 채 불도 꺼져있는 것을 보았다. 바쁜 스케줄과 밀린 숙제하느라 잠이 부족해서 일찍 잠이 들었나 생각했는데 방문까지 걸어잠갔다. 요즘 들어 부쩍 친구관계에 쉽게 상처받고 힘들어하던 터라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가 걱정이 되어 방문을 두드렸지만 답이 없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 딸아이가 나와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슬쩍 들키지 않게 아이를 살펴보았다. 살짝 훔쳐낸 눈꼬리의 눈물자국을 발견하고선 역시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만 모르는 체하며 묻어난 눈물을 닦아주며 가볍게 이야기를 꺼내었다.
“ 어! 물이 묻었네. 눈물인가? 자다일어나서 하품했어? 눈물이 났네.” 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왜? 무슨 일이 있어?” 조금 망설이다 아이가 말을 꺼냈다. “ 또 한명이 나갔어.” “어? 누가?” 라는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나의 머리속은 아이 주변의 많은 친구들과 상황들을 빛의 속도로 스캔하면서 그 말의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
“한명이 나갔는데 또 한명이 나갔대.” 아이는 한가지 단서를 더 흘리고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시 나의 사고력를 총동원하려는 순간 번뜩 떠오르는 단어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한국의 아이돌 그룹인 ‘EXO 엑소’ 였다.
올초부터 부쩍 K-Pop에 관심을 보이더니 봄무렵부터 푹 빠져있는 아이돌 그룹 EXO의 멤버 중 한명이 여름에 빠져나갔는데 또 한명이 빠진다는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고 나니 아이의 돌발적인 행동의 원인이 확실해졌다. 허탈하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최대한 아이의 시각으로 아이가 겪고 있는 다양한 일들을 함께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어른의 눈높이에서는 아주 하찮고 쓸데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아이의 시각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어보고 귀담아 들어주고 같은 눈높이로 그것들을 바라보며 공감하려고 노력할 때 자기와 소통하려는 나의 노력을 알아주면서 마음의 문을 열어보인다.
물론 아이와 같은 시기를 똑같이 경험하며 이미 지나온 어른으로서 무엇이 더 가치있는 일인지에 대한 나의 의견을 들려주며 아이와 대화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와 함께 연예메니지먼트 회사와 아이돌그룹의 생활들에 대한 이야기와 의견을 나누는 동안 어린 아이가 아닌 친구처럼 부쩍 커버린 아이가 곁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