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의 짧은 여름방학을끝내고 마지막 학기를 위해미국으로 돌아온지 삼주 정도 되었다. 4년이라는 기한이 정해져 있는 이곳에서의생활을 최대한 느끼고 가고싶은 마음에 일년이 넘도록한국에 가지 않았다. 한번의휴식 없이 버클리에서의 생활의 흐름을 일년 넘게 이어갔다.
난 완벽히 미국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속되는 익숙함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런 감정 역시“이 곳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라 믿었다. 뿌듯했다.
‘나도 미국 사람이 되나 보다’하고 말이다.
일년 삼개월의 지속된 이곳에서의 생활에 잠시 휴식을 갖으러 한국으로 여름방학을 보내러 출국했다. 공기는 텁텁했고 높은 습도에숨이 탁 막혔다. 하지만 마냥 좋았다. 오랜만에 느끼는행복한 감정이였다. 모든 것이 반가웠다. 내가 진정 있어야 하는 곳에 돌아온 기분이였다.
몇년 전 까지만 해도 나는 서울이 너무 싫었다. 아니, 싫다는 감정을 내 자신에게 주입시켰다. 복잡하고빠르고 차가운 곳이라 생각했다.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 늘 샌프란시스코와서울을 비교하며 서울을 흉보곤 했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 앞에서 미국 자랑을 하면 마치 내가 잘난 것이란 착각에빠져 그렇게 싫다고 말하던 곳을 피해 미국에서 일년넘게 생활면서 내 삶은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 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에 돌아가자 마자 느낀 행복감은 대단했다. 마치 그동안내가 미국 생활에 완벽히적응했다고 자부했던 시간들이 무의미 해질 만큼 말이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타지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던지라 나의 ‘뿌리’가 내린곳이 어디인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이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영어를 못해 느꼈던 소외감에서 비롯한 억울하고 비참한 기분이 꽤큰 영향을 끼쳤는지 유학생활 내내 최대한 “이 곳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었다.
억양이 있는 영어 발음을 숨기려 하고, 미국 사람들이 쉽게 발음 하지 못하는 내한국 이름을 창피해 했다.
그들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문화와 내 삶을 존중해주고 이해하기를 요구하기 보단 내가 그들과 똑같아 지는 것이 ‘옳은 것’ 이라 믿었다.
그래서 버클리에서의 휴식 없이 보낸 일년의 지루함과 무덤덤함이 내가 십년 넘게 내 ‘뿌리’를 외면하면서 까지 얻고자 한 “이곳 사람”이라는 신분을 드디어 달성 했다는 뜻이라 생각하며 기뻐했었다.
하지만 난 그저 지쳐있었던 것 같다. 목표를 이룬 후 한국에 돌아가니 내가 십년 가까이 목표라 삼았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 한 것인지알게 되었다. 왜 내 ‘뿌리’를 외면하면서 까지 ‘이 곳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이제 난 솔직하게 인정하고 싶다. 그동안 많이 외로웠고 한국이 그리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