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갇혀버릴 때가 있다. 대화하다 보면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라 쥐덫에 걸리듯 꼼짝없이 갇히게 되는 것이다. 실패와 좌절의 경험은 스스로 관계를 단절하든 주변 사람들이 먼저 멀어져 가든 고립에 이르게 한다. 마치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Im Nebel)’와 같이 짙은 안개 같은 곤경에 처하면 친구들도 보이지 않게 된다.
소통 부재의 ‘무인도’에서 식욕이 없어지고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목숨도 부질없이 느껴지는 시간의 늪에 빠져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다림이 시작된다. 눈만은 바깥을 향해 민감하게 열려 있다. 수평선 위로 흰 쪽배의 끝자락을 본 듯해 설레임에 달려가지만 한 조각구름일 뿐이다. 어떤 이는 알코올, 마약으로 일시적 위로를 찾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수백 번 낙심한다.
그래도 살맛나는 앞날을 향한 마음을 접을 수 있을까. 오래전에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가 상영된 걸 보았다. ‘고도’는 누군지도 모르고 확실히 온다는 보장도 없지만 인생을 빛내줄 것 같은 대상을 향한 막연한 기다림 가운데, 시시한 잡담으로 일상을 채우는 주인공들에 짜증이 났었다.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끝내 ‘고도’가 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설령, 무인도에서 생을 마감해도 이곳 자연을 만끽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덜 허망하지 않겠는가.
그래, 먼저 요리를 해야겠다. 마늘을 다져넣고 올리브 오일로 생의 의욕을 치고. 아니, 무인도니까 풀뿌리를 캐고 물고기 한 마리 잡아 올려 식탁을 차려보자. 눈물 젖은 빵을 먹어봐야 인생의 참 맛을 안다고? 소금 대신 눈물에 찍어 먹어볼까. 나무와 흙의 생기로 전신욕을 하고, 다람쥐에게 말도 걸어본다.
행운의 여신을 기다리는 대신, ‘희망’이라는 이름의 배를 만들어볼까. 인생의 밤을 끌어안으니, 밤하늘에 총총 박힌 별들이 가만히 속삭여준다. 삶의 모든 순간에는 숨겨진 기쁨이 있다고. 어느새 별들이 내려와 가슴에 안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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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고등학교 독일어 및 일본어 교사로 근무했다. 미국 온 지 8년, 제2언어 교수법과 한국학에 관심이 많고 한국학교에서 일하기도 했다. 수학을 싫어하고 어떤 언어든지 배우고 가르치는 건 즐겁다. 현재는 작가의 꿈을 키우며 습작에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