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강혜리 ㅣ 남자 둘 여자 둘

2014-07-1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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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렸을 때 남자 셋 여자 셋 이란 시트콤을 본 적이 있다. 같이 자취하는 대학생들이 모여사는 이야기를 그린 프로그램이었다. 어린 나에게 그 들은 모두 어른처럼 보였고, 그들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도 대학생이 되면서 자취생이 되었고, 지금은 현재 남학생 두 명과 여학생 한 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다 큰 숙녀와 남자들과 사냐고 다그치기도,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보다 그들과의 생활은 굉장히 편하다.

처음 그들과 살게 됐을 때는 나도 물론 조심스러웠다. 화장실을 사용할 때도, 거실에 누워서 책을 읽을 때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편한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곧 우리 네 명은 서로에게 적응을 해갔고 이제는 알아서 화장실 앞에서 비켜주기도, 샤워를 하기 전에 서로에게 화장실 사용 여부를 물어보기도 한다.


남자들이기 때문에 불편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편해진 부분들이 많다. 그들의 샤워시간은 일반 여자들의 샤워시간보다 상당히 짧으며, 오히려 그들이 여자들보다 깔끔하다. 무거운 것들은 그들이 가뿐히 옮겨주며, 많은 일을 함께 도와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 만큼 우리도 그들을 돕는다. 매번은 아니지만 그들의 옷에 단추가 떨어졌을 때 우리가 단추 꿰매는 법을 가르쳐 주고, 깨끗하게 씻지 않은 접시들을 다시 닦아주는 경우도 있다. 남의 일이라는 생각에 귀찮아질 때도 많지만, 서로 도우면서 우리는 배려심을 배워간다.

물론 서로 생각 차이가 드러나는 때도 있다. 서로 워낙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가끔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면 굉장히 예민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방 안에 들어가 서로 얼굴 쳐다보기도 싫어서 나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며칠 지나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에게 오늘 뭐 했냐를 시작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마치 가족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마주 보는 얼굴에 정이 생기고, 사이가 돈독해지면서 그들과 또 하나의 식구가 되어가고 있다. 원하던 원치 않던 그들과 생활하면서 생겨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통해 남자들과 여자들이 함께 살지 않았으면 몰랐을 법한 경험이 쌓여가고 있다. 부디 나중이라도 그 경험들이 빛을 발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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