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최철미 | 어떤 생일날

2014-05-26 (월) 12:00:00
크게 작게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나보다 어리지만 아주 똑똑한 친구 케이. 그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주의자. 눈코 뜰 새 없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이민 생활 탓에 정치는 아예 관심 밖이 되어 버린 나는 케이가 이따금씩 정치에 대해서 언급하면 그저 그러려니 하고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월은 너무나 잔인한 달이었고, 사순절은, 아니 고난 주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엄마이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런 케이가 추모 집회에 간다 길래 물어 봤다. “언제 하는데?”, “5월 11일 Mother’s Day” 나는 그날 아침부터 남편과 함께 남편이 일하는 교회에 가야 했다. 미국 교회에서는 성탄절, 부활절 다음으로 어머니 날이 중요한 교회 행사일. 남편은 해마다 어머니 날과 아이 생일에 교회 헌화를 한다. 남편이 올해는 무슨 꽃이 좋겠냐고 묻길래, “난이 좋겠네요” 했더니 강단에 난 꽃 화분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오늘이 무슨 날이지요”하고 묻는 목사님에게 "Today is my mommy’s birthday"라고 우렁찬 소리로 발표해 버린 우리 아들, 아이 덕분에 남편의 organ 반주에 맞추어 미국 교인들의 ‘Happy Birthday to You’합창을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고, 오후에는 내가 다니는 한인 교회에 가서 헌금 기도를 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 사랑하는 자식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부모님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또 위로해 주소서". 케이가 집회에 참가해서 시위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왜 그런 봉헌 기도를 했느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회가 끝나고, 누나의 50세 생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면서 타주에서 주말 비행기를 타고 온 동생 내외와 식사를 했다. “누나 지난 반세기는 고생 많았지? 남은 반세기는 행복하게 살아” 집에 오니 케이가 참가한 San Jose 집회에 300여명의 교포들이 참석했다는 소식이, 5월 18일에는 미 50개 주에서 한 날에 집회를 한다는 소식과 함께 미시 USA에 나와 있었다. 당초 5만8,000달러를 목표로 했던 New York Times 광고 모금액은 4,000명이 넘는 아줌마들이 참가해서 16만달러을 넘었다고. 미시 USA는 미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아줌마들과 애 엄마들이 모이는, 지극히 평범한 곳이다. 무엇이 이 아줌마들과 엄마들을 그토록 뿔나게 했을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