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승환의 고전산책 101 <55> 로맹 롤랑 ‘장 크리스토프’

2014-03-3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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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모델로 ‘인류에 대한 진정한 사랑’ 탐색

작가를 꿈 꾸던 20대 청년이 어느날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읽고 감동을 받아 무작정 장문의 편지 한 통을 톨스토이에게 보낸다. 물론 답장을 꼭 기대하고 보낸 편지는 아니었지만 참다운 작가가 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의 대답을 꼭 듣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 후 노장 톨스토이는 이제 막 작가의 길에 들어서려는 신참내기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참된 작가의 조건은 온 인류를 가슴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한 세대를 앞서 살았던 톨스토이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아 19세기 말 유럽의 양심과 지성으로 불렸던 로맹 롤랑은 그의 작품과 삶을 통해 진정 온 인류를 가슴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서 전 생애를 바쳤다.


로맹 롤랑은 전 10권으로 쓰여진 대하소설 ‘장 크리스토프’를 발표해 19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거장의 삶을 동경했던 롤랑이 존경했던 또 한 명의 인물은 악성 베토벤이었다. 롤랑은 베토벤에 대해서 “그는 진정한 승리자이며 인간의 옹졸함을 정복한 삶의 완성자로 자신의 운명과 비애를 극복하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한 영웅”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장 크리스토프는 바로 그 베토벤과 자신의 삶을 모델로 쓴 대하소설이다. 주인공인 크리스토프는 독일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인물이다. 가난한 술주정뱅이와 하녀 사이에서 태어나 음악적 재능은 있었지만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로 집안이 파산했고, 첫 사랑마저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별로 끝을 맺는 시련을 경험한다. 이런 과정 가운데 주인공은 인생의 의미는 단지 행복해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데 있다는 나름대로의 진리를 깨닫는다.

신동 소리를 들으며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에 들어선 크리스토프는 당시 독일 사회의 허위의식과 부조리에 분노하고 자유로운 정신을 찾아 프랑스로 이주한다. 프랑스에서 예술가로 명성을 얻게 된 그는 그곳에서 우정과 사랑을 경험하지만 폭동에 휘말려 친구를 잃고 정당방위이기는 했지만 뜻하지 않은 살인을 하고 스위스로 도주하게 된다.

소설 장 크리스토프는 시대와 인생의 풍랑을 이겨내고 예술적 업적을 이룬 한 인물, 즉 베토벤을 인생 모델로 그려내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과 분위기는 흡사해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 특히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을 연상시킨다. 7년 동안에 걸쳐 신문에 연재되었던 이 소설은 당시 프랑스는 물론 미국에서까지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결국 롤랑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대작이 되었다.

한편 롤랑 자신도 베토벤처럼 주어진 환경과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의 인물이었다. 작가 초년생이었던 롤랑에게 오래전 톨스토이가 준 짤막한 조언 ‘인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그의 인생과 작품을 관통한 초지일관의 작가 정신이었다.

예찬출판기획 대표(baeksteph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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