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변신은 무죄

2014-03-22 (토) 12:00:00
크게 작게

▶ 김화진

거울 앞에 앉는다. 이미 퇴직을 하고일정 시간의 출근을 하지 않는 지가 오래다. 종일 집에 머물러 있다 해도 민얼굴로 하루를 보내는 일은 없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단정함으로 메우기 위한 생활습관인 셈이다.

처음 미국에 온 날이 10월20일이다.

시차적응이 되지 않은 채 언니와 형부가 안내해주는 미국관광을 하면서 거의 몽롱한 정신이었다. 얼핏 큰길 코너를 돌면서 나는 이상한 광경에 잠이벌떡 깼다. 임신한 수녀가 담배를 입에문 채 전신주에 비스듬히 기대어있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보아왔던 여리고조용한 수녀님들을 떠올리며 어리둥절한 사이 언니 내외는 박장대소를 했다.


바로 그 날이 핼로윈이었다.

때때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싶었다. 엄마 나이 마흔이 다 되어 막내로 태어난 탓에 친구들의 엄마보다 늙은 모습이 싫었다. 예쁜 아이를 보면부러웠고, 노력은 많이 하지 않으면서 성적이 좋은 친구들을 시기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간직했던 아나운서의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에 마이크 앞에 선 멋진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곤 했다.

누구에게나 이상형이 있을 것이다.

현재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또 다른 경험을 추구할 수도 있으리라.

성형의 의술을 빌어 외모를 바꾸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현상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패션이 저마다 개성을 강조하며 구매를 부추기는 것도 이러한욕구에서 기인한다. 각종 화장품이 그렇고 장신구들도 예외는 아니다.

옷장에 가득한 옷을 본다. 한 번에단 한 벌만 입을 수 있는데 어찌 그리많은 종류와 가짓수를 재어놓고 있는지 부끄러운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매일같이 화장을 하고 다른 옷을 입고악세사리 장식을 하면 우선 나 자신이새롭다. 남에게 보여준다는 생각보다자신에게 충실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

10월이 마무리되는 핼로윈이 이번주로 다가온다. 해마다 수퍼맨으로, 닌자로, 기사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손자녀석이 올해엔 또 어떤 캐릭터를 선택할 것인가. 많은 이들이 자기가 아닌 모습으로 변신하는 재미가 기대된다.


젊은이가 예쁘게 꾸밀 때엔 단장한다고 말한다. 중년을 넘어 60대의 여자가 화장하는 것은 거의 변장 수준이된단다. 변장도 좋고 분장이라 해도 별수 없다. 심지어 환장이라 해도 따지지않겠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본다. 웬 여자가 무표정한 눈빛으로 마주하고 있다.

서둘러 민낯 위에 크림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아이라인을 그려 촛점이 선명한 눈을 만들며 토닥이고 나니 어느새 환하게 웃는 얼굴이다.

마음도 산뜻한 기분에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하루를 꿈꾼다. 계속 거듭나고 싶다. 더욱 나이 듦의 멋이 드러나는 모습이면 좋겠다. 욕심 없는 평안함이 가득한 표정 가꾸기도 게을리 말아야겠다. 그러려면 먼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겠지. 겉모양뿐 아니라 마음의 변화를 위해 애써야겠다. 어제와는 다른 내가 오늘을살고 있다.

변신한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하노라.


- 김화진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 넌픽션 입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신인상. 재미수필문학가협회이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