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윤지서 ㅣ 영화 한편 보실래요?
2014-03-03 (월) 12:00:00
희미하게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 그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추억이 하나 있다. 오래 전에 없어진 곳이라 아는 분들도 드물겠지만 내가 나고 자란 서울에 시민회관이란 곳이 있었다. 지금의 예술의 전당에 견주어 손색이 없었던 문화공간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 손을 잡고 언니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던 걸로 기억된다. 어린 나이에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자다가 깨기를 반복해 어떤 내용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떨어진 토마토가 깨져 버리는 장면과 보트가 뒤집어져 모두가 물에 빠져 버리는 장면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마 이정도 얘기하면 센스 많은 독자들은 어떤 영화인지 눈치를 챘을 것이다. 맞다.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이란 영화다. 그 후로도 몇 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으니 아마도 시민회관에서 본 그 영화가 내 생에 첫 문화 행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오랜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나를 꼭 닮은 딸이 태어나 나의 어릴 적 그 나이쯤 되었을 때, 소중하게 간직한 사진첩을 꺼내보듯 딸과 함께 그 명화를 감상해볼 기회를 만들어 봤다.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화면이 뚫어져라 쳐다 보더니 틈만 나면 반복해서 틀어대는 통에 노래를 다 외울 정도까지 돼버렸다. 앳된 모습이었던 여주인공은 이미 오래 전 할머니가 되어 버렸고 작은 입을 달싹이며 노래를 따라 부르던 내 딸은 어느새 달콤한 로맨스를 꿈꾸는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난 아직도 세대를 넘어 우리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해준 그 영화를 사랑한다. 보여주기 식의 많은 예산과 화려한 장면보다는 우리에게 잔잔함과 훈훈함을 선물하는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 내 엄마가, 또 내가 그랬듯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 딸의 자식들도 함께 감상하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감동을 헤아려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또 다른 우리만의 추억거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아 차 한잔을 대접하는 손길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비 내리는 오후, 창가에 앉아 조심스레 건네본다. "저랑 영화 한편 보실래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