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전윤재 ㅣ 나는 냉면이 싫어요

2014-01-3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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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들, 특히 외가 쪽 가족들은 냉면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사랑한다는 표현이 맞다. 외가 식구들은 북쪽이 고향이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덕에 그 맛나다는 함흥 냉면을 집에서 맛보는 호사를 누리며 자랐다. 우리 가족들이라면 누구든지 집에서 만든 할머니표 냉면을 좋아했고, 명절이면 가족들을 보는 것도 반갑지만 이 냉면을 맛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가워하며 외가에 모였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가족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질 때 구석에서 밥 달라고 징징 거리는 녀석이 있었는데, 그게 나다. 아직도 특별한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나는 냉면이 싫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중 어느 곳에도 냉면을 먹어 본 기억이 없는 것을 보니, 아마도 어릴 때 먹은 첫 입부터 냉면을 싫어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나는 냉면을 먹지 않는다. 너무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누군가 권하며 어쩔 수 없어서 한 입 먹어보기는 하는데, 고기도 먹어봐야 맛을 안다고 도대체 어떤 냉면더러 맛있다고 하고 어떤 냉면더러는 맛없다고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유명한 냉면집에 가도 맛도 모르고 냉면을 먹느니 차라리 맛을 알고 즐길 수 있는 다른 음식들을 주문해서 먹는다.

내가 냉면을 싫어한다고 하면 “진짜?”, “왜?”, “어째서?”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 사람 중에 여름에 냉면 한 그릇 안 먹고 여름 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냉면은 인기 있는 음식인데, 싫어한다고 하니 미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되나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싫어한다고 말하거나 반대로 대다수가 싫어하는 일에 대해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매번 소수에 서게 된 내막을 설명하는 일이 곤욕스럽기도 하거니와, 설명을 열심히 해본다 한들 다수에 속한 상대방이 내 입장을 고스라니 이해하게 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일행들과 냉면을 먹게 되는 기회가 생기면 냉면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음식을 주문하겠노라고 정중히 말한다. 꼭 냉면이 아니더라도 함께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두들 다양한 기호를 가지고 다양한 선택을 하면서 산다. 항상 동일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은 다르지만 여전히 즐거울 수 있다. 나는 냉면이 싫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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