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윤연실 ㅣ 신용이야기
2013-12-06 (금) 12:00:00
대학생 때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과 잘 아시는 분의 소개로 한인가정집에서 하숙을 하기로 하고 홀홀단신으로 비행기를 타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에 도착해서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 6개월 정도 있으면서 할부로 산 차를 돌아올 때 남은 할부가로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맞지 않아 내가 머물렀던 집주인 아저씨께서 처리해 주시는 걸로 하고 나는 귀국했었다. 잘 정리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렇게 짦은 미국생활은 마무리가 되었었다. 4년후 다시 미국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크레딧 있는 나는 남편보다 더 좋은 이자율로 차를 살 수 있었고 계속 크레딧을 잘 쌓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몇 년 후 집을 사기로 결정해 남편과 공동으로 융자를 받기 위해 심사를 하는데 내 크레딧 스코어가 400점대이며 체납된 카드만 7개 가까이 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듣게 되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되면서 주변에서 알려준 대로 크레딧을 관리해주는 3대 신용회사에 연락을 취해 소셜번호가 도용되었다는 것을 알렸고 더 이상의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내 모든 계정을 동결시켜 내 신용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바로 연락이 오게 만들어 놓았다. 또한 로컬 경찰서에 가서도 신분도용에 대해 리포트를 하여 기록을 남겼다. 그후로도 수시로 연락오는 카드회사들에게 내가 만든 카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서류를 제출하고 기다리는 과정을 거의 7년 동안 해왔던 거 같다.
그 과정 속에서 그 카드를 만들고 사용하던 사람들이 그 전에 하숙했던 집주인 아저씨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 느꼈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었다. 잊을만하면 콜렉션 에이젼시에서 연락이 왔고, 그럴 때마다 신용회사에 내 크레딧 리포트를 신청해서 확인해보는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지냈던 거 같다. 근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끗한 크레딧 리포트를 갖게 되었으나 이렇게 되기까지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주위분들께 절대로 소셜번호를 아무 곳에나 말하지 말고, 고지서나 서류 등은 분쇄기로 잘라 버리라고 말하는데 이 부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내 경험에서 나오는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