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이 모자란 자를 교황으로 뽑아준 사람들을 주님께서 용서하시길 바란다”란 말로 교황 선출 당시 여유와 재치를 보여줬던 프란치스코 교황. 그는 ‘가난한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교황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선택할 만큼 의식 있는 교황이다.
지난 3월 교황이 된 이래 프란치스코 교황은 획기적인 발언과 조처들로 주저 없이 종교계의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 사람이 새로운 자리에 올라 목소리를 냄음으로써 세상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보게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6일 바티칸은 84쪽 분량의 ‘교황 권고’를 발표했는데, 그 안에는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몰고 가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로 규정 하는 내용이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돈에 대한 숭배를 엄중히 경고하며, 10계명의 ‘살인하지 말라’가 이제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체제를 유지하지 말라고 말해야 할 때다. 이런 경제체제야 말로 사람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풀이하였다.
종교계의 개혁 및 사회참여의 움직임은 항상 있어 왔지만, 바티칸의 교황이 직접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교회가 현실 참여를 해야 한다고 강고히 가르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신선할 뿐 아니라 가히 충격적이기도 하다.
교황은 사회에 대한 비판 및 약자 보호 뿐 아니라, 종교계 내부의 혁신에 대해서도 눈을 감지 않는 듯하다. 추기경들의 사치를 비판하면서 몸소 소박함과 검소함을 실천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의 보수주의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거리로 나가는 교회, 손에 흙을 묻히는 교회를 표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들을 보면서 작게는 나 자신, 크게는 사회에 대해 다시 한번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개개인의 정치적 입장이나 경제적 참여 분야는 다를지라도 이 사회가 가난한 자와 부자를 양극화 시키는 쪽으로 기능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어느 순간 우리는 정지하고 주변을 돌아다 봐야 하지 않을까.
정치가 가진 자들 위주로 정책을 펼치고 있고, 아무리 선거를 통해 정치참여를 해도 평화, 정의, 평등의 수준이 더 나아지고 있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라도 우리는 교황 프란치스코 말 대로 ‘진정한 종교인’은 어때야 할지 반성하고 실천해 봐야 할 것이다.
지난 주말은 추수감사절이었다. 굳이 터키를 굽지 않았다 해도 가족들과 모두 따뜻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에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시간에도 당장 내일의 식탁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추수감사절이 단지 내 가족의 풍요로움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내 이웃, 우리 사회에 대한 자각과 실천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이 추수감사절에 더욱 빛났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