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전윤재

2013-11-0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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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살이세요?”라는 질문에 도대체 내 나이가 몇인지 계산이 안된다. 결국 내 나이로 답해주기를 포기하고 내가 태어난 해로 대답을 대신한다. “생일축하해”라는 주변의 축하에 선뜻 고맙다라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나를 지나간 시간을 마주하니 그 엄청난 속도에 압도되어 입이 막힌 탓이다. 나이를 먹으면 다들 나같은 거 아니겠어 하고 무심히 넘겨본다. 그리고 돌아서 생각해보니 나이먹기를 기다리며 설렘으로 잠들던 섣달 그믐날 밤이 떠오른다. 친구들, 가족들과 내 생일을 축하할 생각에 생일이 오기 몇달 전부터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던 내가 떠오른다.

나이 먹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이 먹는 일은 그저 때 되면 일어나 아침먹고 점심먹고 저녁먹고 잠자리에 들듯 아무 생각없이 벌어지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일상이 되어버린 것들은 익숙하다. 양치질하고 씻는 일이 그러하듯 밥먹고 설거지하는 일이 그러하듯 나이 먹는 일이 이제는 익숙하다. 가끔 삶이 내게 서운해하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커피 한잔 마시듯 무심히 나이먹는 일이 벌어지다 보니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특별함도 사라져버린 것 같아서다. 특별하지 않다보니 특별함 안에 함께 있는 설렘도 감사도 기쁨도 기다림도 모두 사라져버린것 같아서다.

몇살이냐고 물어보면 반사적으로 나이를 말할수 있는 때가 있었다. 기쁨에 가득 차 반짝이는 눈으로 새해를 맞던 때가 있었다. 설렘으로 생일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생일축하 인사에 기분이 좋아져 하루종일 휘파람을 불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그런 추억의 순간들은 지금도 나를 유쾌함으로 미소짓게 한다. 매일 매일을 특별한 일들로 채울 수는 없겠지만, 특별한 것에는 특별한 자리를 내어주고, 삶에서 한 자리쯤은 조금 다른 것들로 채워보고, 특별한 시간을 통해 평범한 시간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늘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항상 특별해야 하는 삶에게 내가 해 줄수 있는 작은 선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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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재씨는 이화여대 법학과, 동대학원 법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결혼후 미국으로 건너와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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