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윤원정ㅣ 대화의 깊이
2013-11-06 (수) 12:00:00
대학 입학을 앞두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그들과의 가벼운 소통. 흔히 말하는 수박 겉핥기 식의 대화들은 어떠한 인간관계 성립의 피치 못할 기초 단계라 믿어왔지만, 어느날 느끼게 되는 그 대화들의 ‘텅 비어있음’은 인간관계의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하였다. ‘시간 때우기’식의 대화들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풀어 나갈 수 있는 이야기들을 되풀이하며 나는 생각하는 기능을 잊은 듯하였다. 또한 ‘이런 가벼운 대화들이 내가 지금 이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성립시킬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은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미국 19세기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Walden’에서 인간사회의 소통에 대해 서술하였다. 헨리 소로는 ‘깊은 대화’는 곧 인간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였다. 위에 말한 것 같은 ‘가벼운’대화들은 사람과의 관계에 어떠한 장벽을 만든다 생각하였다. 더 깊고 진실된 관계 성립을 위해선 ‘사소한’ 이야기들이 아닌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깊은’ 대화가 절실하다고 하였다.
‘가벼운 대화’를 회피하던 나에게 소로의 소통에 대한 글은 너무나도 반가운 존재였다. 동시에 내가 이해심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도 들었다.물론 나의 이상적인 세상에선 모든 사람들이 생각의 깊이를 도전시키는 대화들을 늘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빠르고 혼란스럽게 흘러가는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서 ‘깊은’대화는 어떻게 생각해보면 사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경멸해오던 ‘가벼운 대화’들은 바쁜 생활 속에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닐까.‘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생각의 깊이를 도전하고 싶지 않아하는 소극적인, 또는 게으른 자세가 원인이던 대화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바쁜 현대 사회가 원인이던, 나는 여전히 깊은 대화를 갈망한다.
=====
윤원정씨는 UC버클리 영문과 3학년생으로 20세기 이후 모더니즘 문학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인방송 동아리 ‘버캐스트’ 사회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공립학교와 사립 보딩스쿨을 다니며 나름 세상보는 시야를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