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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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뉴욕한인사회 자폐 프로젝트 ②

2013-11-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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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그린커(조지 워싱턴 대학 인류학과 교수)


몇 년 전 한국에 머물 당시 수영이란 이름의 예쁘고 명랑한 10세 소녀를 만난 적이 있다. 수영은 옷, 음악 그리고 그림을 좋아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어머니 승미의 공포, 회한, 분노 그리고 희망이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거의 알지 못한다. 승미에게 처음 필자가 말을 걸었을 때 그녀는 막 자신의 근심걱정을 무언가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중요한 여행을 시작할 참이었다. 바로 수영을 뭔가 잘못됐다는 표상이 아닌 승미 자신과 다른 엄마들이 바로 잡을 수 있는 상징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장난감과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는 조그만 아파트의 식탁에 앉아 있는 승미는 피곤해 보였다. 그녀는 단정하게 가꾼 모양으로 새로운 머리 스타일을 했지만 수영이 뒤에서 뛰어다니며 계속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고 있었다. 수영은 승미의 첫째 아이여서 승미는 영원히 "수영 엄마"로 불릴 것이다. 자신의 아이로 정체성이 정의되는 일, 엄마로서의 역할은 많은 여자들에게 대단히 즐거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처음에 수영은 승미에게 기쁨보단 걱정을 더 많이 안겨줬다. 수영은 처음부터 남들보다 무엇이든 늦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뒤집고, 늦게 앉고, 뒤늦게 걷고 말했다. 수영과의 눈 맞춤은 일정치 못했고 손과 손가락으로 평범치 않게 움직이곤 했다.

의사들은 수영과 같이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은 아직 갓난아기일 때도 진찰받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강하게 권유했지만 수영은 9세가 될 때까지 그러지 못했고 학교에서 사회적으로나 학업적으로도 정상적으로 지내는데 고생이 많았다. 승미는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보다는 자신을 탓했다. 어쩌면 수영은 아직 자궁 속에 있을 때 어떤 식으로든 큰 충격을 받았던지 아니면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진찰을 받고 나서야 승미는 의사, 가족, 교회, 동네 및 지역 학교들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아 수영이 성공적인 학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2011년 필자와 동료들은 한국의 자폐증 연구결과를 출판했다. 6년간 수만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기초검사를 해보고 수백 명을 대상으로 진료 평가를 해본 결과 일산에 거주하는 자폐증 어린이의 3분의2가 수영과 같이 자폐증 증상을 인지하지도 진단받지도 못한 채 아무런 심리치료나 특별교육을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도 일산의 부모와 교사들은 이번 연구에서 (자폐증을 보유한 것으로) 밝혀진 아이들이 광범위한 사회적 또는 지적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는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많은 자폐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단순히 미국에 비해 특별교육 서비스가 뒤떨어져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심리적 치료방법은 전문가들만 사용할 뿐 흔치 않다. 서울대 병원이 현재 한국에서 첨단 진단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자격증을 보유한 치료사를 고용한 유일한 대형 병원이다. 그것도 2007년에서야 시작했다. 게다가 자폐증이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가진 질병이어서 누군가는 심각한 장애를 앓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과학이나 기술 분야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소아과 의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폐증을 심각한 장애라고 여기는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다.

사실 자폐증이라고 진단을 받지 못한 일산의 아이들은 모두 매우 똑똑했다.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 (실제로 많은 자폐증 아이들은 한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자신의 아이들이 사회적 생활에 문제가 있고 만약 적절히 치료받지 못한다면 자폐증 증상이 아이들의 미래에 많은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치료받을 방법을 찾지 않는다.
자폐증이 어떤 식으로든 어머니의 잘못으로 발생했다는 인식이 계속되면서 자폐증 진단과 치료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부모들은 자신들에게 단지 2가지 선택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폐증이 부모들의 잘못으로 야기됐다고 믿던지 아니면 자폐증은 가족 전체에 부정적으로 반영되는 유전적 장애라고 믿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이러한 선택적 믿음의 이면엔 부모들의 수치심 그리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사실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 문제로(종종 스스로를 탓하고는 하지만) 따돌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같은 심리적 상흔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은 승미가 깨달은 것처럼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과 가족들이 진단과 치료를 피할수록 더욱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문의: 202-994-6984 ▲원문 번역=변성희 한국자폐인사랑협회 국제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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