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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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드 프랑스’ 그 길, 당당한 삶이란…

2013-10-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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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 정찬열의 산티아고 순례길 2,000리

▶ ② 피레네산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투르 드 프랑스’ 그 길, 당당한 삶이란…

산티아고 길,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야 한다.

‘투르 드 프랑스’ 그 길, 당당한 삶이란…

비 갠 뒤, 피레네산 골짜기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암스트롱과 울리히의 엇갈린 인생 떠올라
갈림길마다 노란 화살표가 방향 알려주고
천년 세월 녹아 있는‘알베르게’서 하룻밤

4월27일, 가랑비가 내린다. 론세스바예스까지 19km다. 차에서 내린 아홉 명이 배낭을 지고 길게 늘어서 찻길을 따라 걸어간다. 오른쪽은 절벽, 왼쪽은 낭떠러지 아래로 강이 흐른다. 숲이 울창하다. 찻길을 걸을 때는 차가 오는 쪽을 마주보고 걸어야 한다. 안전을 위해서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메리 아주머니가 큰 배낭을 짊어지고 힘들게 따라온다. 올해 예순여덟 살인데 은퇴하고 나서 이제야 벼르던 길을 걷게 됐다며 좀 들뜬 기분이다. 배낭이 무겁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희미하게 웃는다. 힘겨워하는 모습이 역력하지만,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다. 자기 몫은 자기가 짊어지고 갈 수밖에. 함께 온 그녀의 친구 아이린과 얘기하며 걷다가 뒤돌아보니 메리는 보이지도 않는다.


비가 그쳤다. 자전거를 탄 젊은이 서너 명이 가파른 길을 힘겹게 올라간다. 그러고 보니 이 길이 TV에서 보았던 길인 성 싶기도 하다. 해마다 수백명 자전거 선수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20여일 동안 장장 4,000여km를 질주하는 투르 드 프랑스 경기장면.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사이클 경기가 바로 이 길을 통과했었다.

투르 드 프랑스 경기를 생각하면 1999년부터 일곱 번이나 챔피언을 했던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 선수가 생각난다. 고환암을 이겨낸 의지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우리의 가슴 속에 각인된 또 한 명의 선수, 독일의 얀 울리히 선수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암스트롱이 처음 우승할 때부터 줄곧 2위에 머물러 온 암스트롱의 숙적이었다. 2003년 대회 때, 울리히와 암스트롱은 다섯 번째 대결을 벌였다. 그런데 앞서 달리던 암스트롱이 구경꾼의 가방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암스트롱에게는 절망의 순간, 얀 울리히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울리히는 넘어진 암스트롱 곁에 사이클을 세우고 그가 일어나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잠시 뒤 암스트롱이 일어나 달리기 시작하자 얀 울리히는 그제야 페달을 밟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 대회에서 울리히는 또 암스트롱에게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 넘어진 라이벌이 다시 일어서기를 기다려 준 울리히의 행동을 세계는 ‘위대한 멈춤’이라고 극찬했다.

암스트롱은 빨리 달렸고 울리히는 바르게 달렸다. 그런데 2012년 국제사이클연맹(UCI)은 암스트롱이 지속적으로 금지 약물을 복용해 온 사실을 밝혀냈다. 암스트롱의 모든 수상 실적은 취소되었다. 2003년의 진정한 챔피언은 암스트롱이 아니라 당시 2위였던 독일의 얀 울리히라는 사실이 뒤늦게 공인받게 된 것이다.

당당한 삶이란 게 무엇인지 이 길을 걸어가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울리히를 통해 느꼈을 독일인의 자부심을 짐작해 본다. 개개인의 인격이 모여 국격(國格)을 이룬다. 그의 선택은 독일 국민의 수준을 세계에 과시한 사건이 아니었을까. 잘못된 역사를 참회하는 오늘의 독일은 그런 국민의 수준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역사를 속이는 일본과 극명하게 대비가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울리히가 있던 자리에 한국 선수가 있었다면, 그도 울리히 같은 행동을 했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그랬을까?… 모를 일이다.


수백명 자전거 선수들이 달려갔던 길을 천천히 걸어간다. 노란색 화살표가 골짜기 쪽을 가리킨다. 저 화살표를 따라가야 한다. 화살표는 길가 표지판에 그려졌거나 표지석에 새겨져 있고, 때로는 나무둥치나 집 담벼락에 그려져 있기도 한다. 저 노란 화살표를 놓치면 길을 잃게 된다. 그렇다고 겁낼 필요는 없다. 화살표를 놓칠 경우, 나 스스로 화살이 되어 산티아고를 찾아 날아가면 되는 거니까.

비 갠 피레네산 골짜기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상큼하게 와 닿는 숲 냄새. 나무들이 새 순을 피워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미가 새끼를 낳을 때 산고를 치르는 것처럼 나무들도 해마다 제 몸을 흔들어 새 잎을 틔워낸다. 동물은 젖 비린 냄새를 피우며 태어나지만 나무는 저렇게 향긋한 잎 냄새를 풍기며 어린 싹이 돋아난다. 계곡을 따라 물이 흐르고 물 따라 길이 나있다. 길은 오솔길, 사람들이 한 줄로 나란히 걷고 있다. 길은 골짜기를 건너 마을을 지나고, 다시 차도로 이어진다.

우장을 벗고 길가 돌 위에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한다. 배가 고프다. 집에서 가져온 생식을 한 봉지 꺼내 물병에 타서 마셨다. 사 먹을 곳이 없는 경우를 대비해 가져온 비상식량이다. 잠깐 쉬는 동안 한국인을 만났다. 두 청년과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다. 대학생인데 어머니가 오래 전부터 원하던 길이라 모시고 왔다고 한다. 또 한 청년은 친구라 했다. 아들 이름이 원대한. 이름도 좋다. 어머니를 앞세워 걸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저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가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론세스바예스 8.5km. 시멘트로 만들어진 조형물에 노란색 화살표와 산티아고 길을 상징하는 조개무늬 표시가 길을 안내한다. 작은 돌멩이들이 이정표 위에 수북이 쌓여 있다. 돌을 쌓아 하늘에 기원하는 것은 세계 공통의 풍습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문경 세재를 올라가면서도 저렇게 길가에 돌멩이를 쌓아 놓은 모습을 많이 보았으니까.

빗줄기가 굵어진다. 오늘 산등성이를 못 간 게 아쉽지만 생각해 보면 아름답지 않는 자연이 어디 있겠는가. 피레네 산의 속살을 만져보라고 이 길을 택하게 하지 않았을까. 흙길이 진창이 된다. 철벅거리고 미끄러지면서 언덕길을 올라간다.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잎은 잎대로 피어나고 눈은 눈대로 내린다. 잠깐 숨을 돌려 먼 산을 바라보니 봉우리에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어, 그러고 보니 어느새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페인에 들어서 버렸다. 국경에는 군인이 지키고 신분증을 검사하는 절차가 있는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눈보라를 뚫고 론세스바예스 성당에 도착했다. 오늘 27km를 걸었다. 사람들이 순례자 여권을 들고 줄을 서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숙소인 알베르게는 지역에 따라 5유로부터 10유로를 받는다고 한다. 이곳은 10유로, 15달러 정도다.

등록을 마치고 배정된 알베르게에 도착해 보니 커다란 창고 모양의 건물이다. 11세기에 세운 건물인데 순례자 병원으로 쓰던 것을 개조했다고 한다. 천년 세월이 녹아 있는 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어제처럼 이층 침대가 놓여 있다.

배낭을 벗어 놓고 6시부터 시작되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참석했다. 순례길 첫 날 유서 깊은 성당에서 감사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미사 중 순례자들의 국적이 호명된다. 미사가 끝나고 순례자를 위한 저녁식사 시간. 예약이 필요한데 한 사람당 10유로다.

잠자리에 든다. 침낭 속에 웅크리고 누웠다. 어머니 자궁 속처럼 편하고 아늑하다. 150명이 함께 잠을 잔다. 밤 10시, 등을 끄자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 베개에 때를 묻히고 간 사람, 천 년 동안 이 건물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천 년이란 얼마나 긴 세월일까. 기껏 몇십 년 희로애락을 각축하다가 한 줌 먼지로 돌아가는 인간이란 존재는 또 무엇인가. 순례길 첫 날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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