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손예리 l 학부는 나를 키우는 과정

2013-10-14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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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학생일 때 평생 가고픈 길을 찾아 한결같이 나아가지만, 많은 이들은 졸업한 후 여러 경험 끝에 그 길을 찾기도 한다. 그중에선 학부 과정에서 좋은 취업을 위한 이유 하나로 어려운 전공을 선택해 후회하는 친구들도 많다. 대학시절엔 공대, 수학, 경영학 등 어려운 공부를 하느라 고생해서 후회하고, 졸업해선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느라 또 후회한다. 오히려 좋아하는 공부를 했다면 재학시절이 즐거웠을 텐데, 고생만 하다 졸업했다는 것이다. 대학을 다니는 방법은 여러가지 있지만, 취업만을 위해 힘든 과목을 이수하고 졸업하는 것이 전부는 아닌 듯싶다.

화공대를 전공했던 내 친구 한 명은 졸업한 후 전혀 다른 길을 택해 인정받는 요리사로 일하다 지금은 벤처기업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얼마 전 대화를 나누다가 그 친구가 역사에도 굉장한 관심과 지식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가 푸념섞인 투로 “아, 대학 다닐 때 역사강의도 들을 걸. 진짜 재밌게 공부했을 텐데. 부전공이라도 할 걸” 이러는 것이었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그리스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강의를 한두번 들었는데, 돌이켜보면 내 전공보다 더 즐겁게 공부했던 것 같다. 전공이었던 화학은 고생하고 울면서 공부했는데, 그리스 문학은 진짜 한번 듣고도 쏙쏙 배워졌으니 말이다. 그 당시엔 4년 내에 빨리 졸업하여 다음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전공 외 공부나 활동은 거의 하지를 못했는데, 그러다 보니 대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지나쳤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흥미와 재미를 가졌던 학과를 부전공이나 공동전공으로 배우고, 좋아하는 봉사활동도 하면서 경험과 지식을 넓혔으면, 대학이라는 풍요롭고 생동감 있는 곳에서 나를 더 성장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난 요즘 학부과정을 밟고 있는 후배들에게 미래의 직업, 연봉만 보고 대학시절을 보내지 말고,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과목이나, 특별활동 등 다른 것들도 하며 학생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체험하며 자신을 채워가라고 조언한다. 내가 평생 할 직업만을 찾는 곳이 아니라, 나의 길을 찾으며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경험과 성숙함을 키우는 곳, 그곳이 대학교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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