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의 은총

2013-10-12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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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봉호 시인, MD

여름내 온몸 저리던 논밭 만삭이 되었습니다
노동에 닳아 텅 빈 육체는 건드려도 넘어집니다
울타리에 오그라드는 호박꽃잎에 담겨진 여유는
온 들판을 누렇게 칠해 가고도 남습니다
바람에 배불러 나뭇잎들끼리 눈 맞추는 시간
초저녁 분침위에 행복하게 웃다 일렁이던 가을
어느새 얼굴색 환하게 붉게 물들게 하시고
차가운 달빛 쓸어 담아 여며주며 깊어만 갑니다.

정성스레 실려 오는 당신 숨소리 너무 반가워
저의 발걸음은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느릿하게 다가오는 만남의 시각을 새기기 위해
저의 마음은 너무나 성급하게 달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여름 내내 가꾸시던 꿈꾸던 나뭇잎은
된서리에 핏덩어리로 유산 되었습니다
모아진 시신들 정갈히 다비식 치루려니
연기 속에 얼룩져 흘러나온 낙엽의 선혈이
한 해의 기인 삶을 얼룩에서 닦아냅니다.

기인 여정처럼 다가서는 당신과의 만남을
저의 가슴은 애초부터 울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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