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손예리 l 나의 성장통

2013-10-07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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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정말 오랜시간 동안 연락을 못했던 친구와 만난 적이 있었다. 대학교 동창인데, 8-9년 연락이 끊어진 후 뜻하지 않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밥도 함께 먹고, 커피도 마시고, 책방에도 죽치고 앉아 “맞아, 예전엔 그랬지”를 반복하며 오랜만에 학생시절에 관한 수다를 떨기도 했다.

헤어지기 전 그 친구가 나에게 고마운 얘기를 해줬다. “넌 참 변하지 않은 것 같다. 8년전 좋았던 모습은 그대로인데, 대신 그때 아프고 불안정했던 부분들이 많이 자리를 잡은 것 같네”. 이 말이 나에겐 그 어떤 격려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마치, 지난 8년, 그리고 그 전부터 내가 끌고 왔던 내 안의 싸움이, 조금 인정을 받고 “그래 잘 버텼어” 하고 격려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대학교 시절 내 철없던 모습, 또 유약하여 힘들어 하던 모습들을 봐 왔던 친구이기에 더 고마웠던 것 같다.

예전의 나는 너무 쉽게 상처를 받았고, 또 그 상처를 끝까지 놓지 못해 항상 괴로워했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지만, 사실 마음에 생기는 상처는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고 치유되려 끊임없이 내면에서 발버둥치고 애쓰며 싸워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이기고 지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 버티고 잘 극복해내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들이 대부분이기도 하다. 이기는 자도, 지는 자도 없고, 아군과 적군마저 없는, 정말 나 혼자 해야 하는 싸움. 이기지 못해 나에게 화를 내고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고 버티는 것에 나를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싸움.

그리고 그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나를 자꾸 밝은 곳으로 나오게 하며 쓸쓸함과 어두운 면을 조금씩 놓게 만드는 것이었다. 상처를 억지로 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차가운 기억들을 따뜻한 기억들로 감싼 채 살아가며 조금씩 녹여내듯 말이다. 그래서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든다. 슬프고 아픈 상처도, 긍정적인 생각들로 감싸며 조금씩 마음을 앞으로 움직이면, 오랜 시간이 지나가서 돌이켜봤을때 그 상처들은 흔적만 남고 치유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마치 얼음이 녹아 흔적만 조금 남고 없어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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