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윤혜석 ㅣ 마음의 먼지 털어내기

2013-09-2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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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소리도 먼지가 되고 내쉬는 숨도 먼지가 된다더니 발 구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도 없이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조용한 집 안 구석구석에 먼지가 쌓여 있다. 어지르는 아이들이 없는 탓에 청소가 게을러진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자리를 지키는 가구들, 늘 있는 자리에 있는 물건, 한 장의 사진인듯 늘 그대로인 집안, 먼지 털어내는 일을 자꾸 잊는다.

오늘은 잠에서 깨면서부터 머리가 지근거리고 어깨는 뻐근하다. 밖에 하늘은 낮게 깔려 어둑한데 그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아 이리저리 집안을 서성인다. 서서히 밝아지는 햇살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것들, 그것은 곳곳에 쌓인 먼지였다. 언제 했던 청소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창문과 마당으로 나가는 문, 열 수 있는 것들을 다 열고 털어내고 닦는다. 먼지가 털려져 나가는 만큼 뻐근하던 어깨가 오히려 부드러워진다.

열어놓은 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구름은 걷히고 하늘은 푸른 빛을 자랑하며 높아지고 햇살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한가한 주말의 오후. 길을 나서라, 하늘이 나를 유혹한다.


호수를 찾아가기로 한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줄곧 나를 따르고 머리카락이 부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흩날린다. 아침부터 머리를 무겁게 누르던 생각들도 하나씩 흩어진다. 앞 마당에 곱게 꽃밭을 꾸며놓은 집 앞을 지나갈 때는 환하게 핀 꽃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면 마무리지어야 할 과제들, 결정해야 할 제목들이 꽃들의 속삭임에 묻힌다.

세상은 꽃으로 가득하고 꽃들은 노래하는데 꽃이 되지 않는 것들을 가슴에 품은 까닭에 내 마음에도 먼지가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다. 내 안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가 불어오는 바람에 폴폴 일어나 바람따라 날아서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동네를 벗어나 산 쪽으로 향해 난 길따라 가면 그 산 아래 호수가 있다. Lake Chabot. 호수를 휘돌아오면 가슴을 누르던 것들은 어느새 자취도 없고 내 안에 가득 호수가 들어찬다. 발걸음은 날듯이 가벼워지고 숨소리는 맑아진다. 또 숨쉬듯이 말하듯이 먼지는 쌓이겠지만 그때 다시 바람을 품은 호수는 나를 부를 것이고 나는 늘 그렇듯이 다시 그곳에서 먼지를 털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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