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흙먼지 모자 쓰고 온 아저씨, 태양볕에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땀으로 젖은 몸과 지친 마음이 진분홍 페퍼민트 아이스크림 한입에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한여름 길고 긴 낮이 지루한 아이, 일 나간 엄마, 아빠 대신 할아버지 손 잡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설 때 지루함은 벌써 날아가버리고 반짝이는 두눈에 무지개 아롱진다. 레인보 셔벗 핥던 혀로 할아버지 얼굴도 핥은 듯 환해지는 할아버지 얼굴.
공부는 내일, 오늘은 친구라며 세상은 넓다 외치며 뛰쳐나온 아이들, 주머니 뒤집어 이리저리 살펴도 아무래도 모자라는 아이스크림값, 둘이 하나 먹어도 좋은 아이스크림. 뜨거운 눈빛 녹이는 연인의 속살 같은 아이스크림. 그 사랑 너무 뜨거워 목을 넘긴 아이스크림 가슴에서 금방 데워진다. 하얀 눈 내려앉은 듬성한 머리칼, 팔짱 끼고 온 노부부. 투명한 유리컵에 아이보리 연한빛 아이스크림은 녹아내리는 뒤안길 추억을 떠먹는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여름날 아이스크림의 유혹은 뿌리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시원한 유혹에 빠져드는 각기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해 한다. 그걸 지켜보는 눈 또한 행복해진다.
얼마 전부터 하던 일들을 접고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십수년을 시간을 쪼개가며 쫓기듯 바쁘게 움직였던 생활에서 놓여나는 느긋함이 꿈만 같이 평화로왔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몸에 배지 않은 넉넉한 시간의 여유는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점차 바뀌게 되었는데 그 무렵 우리 동네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비록 많은 시간은 아니어도 일을 아직 놓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아이스크림 가게가 아닌가.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즐겁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에 대한 설렘으로 찾은 사람이나 우울한 사람이나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면 우울한 기분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행복해 한다.
뜨겁게 달아오른 여름뿐이랴! 계절에 상관없이 “아이스크림 주세요”를 외치는 그들의 행복한 목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을 살찌우고 쉰이 넘는 종류의 아이스크림은 내 몸마저 살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