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어릴적 한번쯤 접했을 동화책 중 하나가 프랜시스 버넷이 집필한 ‘소공녀’이다.
이 책의 주인공 세라는 순수하고 정의감이 강한 소녀인데, 그녀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공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살았을 땐 그녀의 동심을 맘껏 펼치는 매개체였고, 빈털터리 고아가 되었을 때는 서글픈 현실을 버티기 위한 방법으로 바뀌었는데, 공상을 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주인공이 참 안쓰러웠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항상 상상 속에서 사는 것은 큰 문제이겠지만, 워낙 숨가쁘게 흘러가는 요즘 세상에선 하루에 몇분씩이라도 현실에서 벗어나 머릿속을 전혀 다른 생각이나 즐거운 상상으로 채우며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출퇴근할 때 공상을 자주 한다. 예전 추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생각해보고, 또 어쩔 땐 머릿속을 비우듯 잡념을 털어내기도 한다. 내가 떠안고 있는 업무, 책임, 걱정거리…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내 마음을 쉬게 해주는 것인데, 그렇게 하고 나면 꼭 길고긴 운동 중 큰 심호흡을 한 것처럼 마음이 살짝 가뿐해지기도 한다.
“마음 비운다는 게 어디 쉽나, 가만히 있으면 온갖 생각이 떠올라서 시끄럽지”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내생각엔 “마음을 비운다”는 의미 자체에 오해가 있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마음을 비운다는 건 꼭 “무”의 경지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을 정리하고 조금씩 털어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꼭 조용한 방에 특정한 자세로 앉아서 명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바쁜 하루 속 틈을 찾아 단 몇분이라도 번잡한 생각들에서 벗어나는 게 마음을 쉬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난 오늘도 짧게나마 마음을 쉬게 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출근길에 창밖을 보며 하늘도 구경하고, 재밌는 상상도 해보고, 눈을 감고 아예 생각하는 것을 자제해보기도 한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 지루해서, 특별히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는데 목을 잔뜩 구부리고 스마트폰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