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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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이 목회자의 사명”

2013-07-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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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장로교회가 30주년을 맞아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담임 정창은 목사(사진)는 고민했다. 거창하게 커뮤니티에 알리고 잔치를 해야 하나, 아니면...

“장로들을 설득했어요.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자고. 동의해 주셨고 지금도 보람 있게 생각합니다.”30명의 장학생을 선발해 지원하고 한국의 맹인 30명에게 수술비를 대주었던 일을 두고 한 말이다. 4만달러의 예산이 필요했는데 4만1,500달러가 모였고 모든 기금을 알뜰하게 목적대로 사용했다. 교회의 사명은 받은 은혜를 자랑하거나 안에 쌓아두는 게 아니며 흘러넘치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원칙을 실천한 셈이다. 그 때의 결정은 교회는 하나님의 일꾼을 키우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정 목사의 확신이 배경이기도 했다. 1945년 8월 15일에 태어난 ‘해방동이’ 정 목사는 금년에 목회 일선에서 물러난다. 예정대로라면 후임자가 조만간 부임하게 된다. 퇴임을 앞둔 상황에서 1981년 7월 개척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교회를 섬길 수 있었던 은혜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쉽게도 미주 한인교회들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면이 많죠. ‘내 교회’란 의식이 별로 없어서 갈라지고 떠도는 일들이 많습니다. 교회들이 성장에만 치중하지 말고 ‘성숙’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숙하지 못하면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주변 교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좋지 않은 일들을 목격했고 민족장로교회의 설립도 당시 그런 아픔들을 치유하자는 역할을 하자는 이유도 있었다. 대광고등학교 교목으로 있다 미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큰 방향전환을 하게 된 동기였다. 36살. 그 때 가장 나이가 젊었던 담임목사였는데 지금은 볼티모어 지역 한인교계의 역사를 속속들이 아는 선배 목회자가 돼있다.


교회 명칭을 ‘민족장로교회’라는 흔하지 않은 이름으로 지었더니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에 있는 한인들을 돌보는 사명을 감당하자는 뜻이었죠. 뜻을 확대하면 전 세계의 모든 나라, ‘열방’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구요.”착실히 성장해 1996년 건축을 시작했는데 뜻밖에 어려움을 만났다. 원래 설계사였던 건축업자의 부실한 일처리 때문에 완공까지 10년이 걸려야 했다. 지금은 성도가 많지 않아도 모기지를 잘 감당하고 있어 감사하다. 한 때 방송국을 운영하는 등 교회의 사회 참여적 역할에 관심이 많았던 정 목사는 3년 마다 하나씩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계획으로 버지니아 뉴폿뉴스에 버지니아 민족장로교회를 세웠었다. 지금은 다른 교회와 병합돼 아쉽지만 ‘교회가 교회를 낳는’ 꿈을 잃지 않고 개척교회 기금을 계속 적립하고 있다. 제자를 만든다는 게 훈련시켜 교회 일꾼으로 묶어놓고 부려먹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지닌 제자를 길러내야 한다.

“목사는 자신의 정체성에 흔들림이 없어야 해요. 섬기기 위해 부름 받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죠. 교회를 위해 희생하고 섬기면 하나님이 다 보상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그런 은혜를 체험했습니다.”민족장로교회 후임자와 모든 후배 목사에게 주는 정 목사의 조언이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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