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림있는 신문] 최정 ㅣ 짜장면과 짬뽕

2013-07-18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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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이리로 가야하나, 저리로 가야하나, 망설이게 되는 상황의 결정판이 짜장면과 짬뽕이 아닐까.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땡기고. 고고하게 살고 싶기도 하고 질탕하게 살고 싶기도 하고. 클래식 음악도 듣고 싶고 2PM 도 듣고 싶고. 나가서 뛰고 싶기도 하고 이불 뒤집어 쓰고 자고 싶기도 하고. 짜장면과 짬뽕의 갈등이 짬짜면의 해결책을 내놓듯 르네 마그리뜨(1898-1967)의 ‘빛의 제국’을 보면 시원한 대낮의 하늘과 우수젖은 가로등 아래의 멜랑콜리한 밤이 함께 있어 한 그릇 값내고 두그릇 먹는 시원함이 있다.

종종 내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부터 곤혹스러운 표정과 함께 무얼 그린거냐는 조심스러운 질문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정말 미안하다. 나는 어찌 된 게 반골기질을 타고나 어렸을 때부터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이미지를 그린 그림에 대한 반발 때문에 완전 추상의 길을 내내 걸어왔는데 나이 들면서 젊어서의 오기 내지 무례함이 슬슬 꺽이기 시작하자 자분자분 그림에 대해 설명히 주고 싶은 상냥함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럴 때 추천하고 싶은 작가가 마그리뜨이다. 벨기에에서 태어 난 마그리뜨는 미술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많은 유명화가에 비해 광기도 기행도 없는 조촐한 삶을 살아 낸 화가이다. 생황방편으로 상업 포스터를 그렸던 덕에 사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테크닉이 좋았던 그는 현대미술의 커다란 흐름의 하나인 초현실주의 화가로 살바도르 달리의 으스스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는 달리 사물의 배치를 비논리적으로 뒤섞어 놓음으로 해서 아주 단순하고 쉽게 ‘이게 뭐지? 왜 이 물건이 여기 있지?’ 하는 식의 편한 질문을 던진다. 식별해 낼 수 있는 사물의 형체없이 그저 점과 선과 면,그리고 색채 만으로 표현해 내는 추상은 일견 암호와도 흡사하지 않은가?

암호를 해독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수토쿠 푸는 재미 이상의 짜릿함으로 추상을 음미할 수도 있겠으나 암호 자체가 의미없이 들이대는 골칫거리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바쁜 사람이라면 현대미술이 고울리 없다. 이럴 때 고상한 추상 놀음 보다는 우리가 흔히 꿈에서 노닐듯 상상를 하는 게 편하다. 하늘을 날기도 하고 바위덩어리가 공중에 둥실둥실 뜨게도 하고 정장을 한 신사가 여인네 치마폭의 패턴처럼 수없이 허공을 장식하는 등, 어려운 공상 대신 눈에 잡히는 사물들을 이리저리 내 맘 내키는대로 늘어 놓은 것, 그래서 보여지는 사물을 이리저리 엮어 가며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일종의 일탈에의 카타르시스가 있는 게 아닐지. ‘빛의 제국’을 보면 우선 하늘의 구름이 참 좋다. 하늘색이 연한 것도 좋고 구름의 모양이 단순한 어린아이의 것과 같아 좋다.

시선을 아래로 하면 호수위에 비친 가로등이 과 깃털같이 자잘한 수면의 떨림이 보인다. 은은한 가로등 뒤의 집. 덧창이 닫혀진 창들이 있는 벽면옆으로 노란 실내의 불빛이 따스하게 내비치는 두개의 창문. 그 집엔 누가 사는 걸까. 그 안의 분위기는 어떤 것 일까. 밖에 서 있는 가로등의 애련함을 알고 있을까. 커다란 나무에선 새들이 지저귀고 있으려나. 하늘의 흰구름은 그 어둠을 내려다보며 이 비합리적인 상황이 일견 시원하지 않았을까. 상식을 넘어서고자 하는 그의 그림세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이지 않아 편히 즐길수 있다. 현대미술이 뭐냐고, 왜 이렇게 어려운 거냐고, 아차 하는 순간에 변명 한마디 못하고 무식한 사람이 되버리는 것 같아 모욕감까지 느낀다고, 마음 불편한 관객에게 까지 그는 그저 함께 웃고 잠시 현실을 비틀어 보고 즐기자고 너그럽게 초대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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