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내 전시회 꿈꿔”
2013-07-10 (수)
▶ 무명화가 김효수씨 지병.생활고 속 희망 간직
“내 이름을 건 전시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요.”
고희를 바라보는 무명화가 김효수(67·사진)씨가 9일 브롱스의 허름한 아파트에 앉아 풀어놓은 이야기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김씨는 1980년대 맨하탄 소호의 한 갤러리 전속 작가로 소속될 만큼 촉망받는 화가였지만 이후 그만의 독특한 예술세계에 대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점차 잊혀진 인물.
누님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도 10년전부턴 끊겨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이 수입의 전부가 될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된 약 200점의 각종 미술작품들 역시 그의 아파트 곳곳에 마치 갈 곳을 잃은 듯 널려 있었다.
지금까지 김씨가 작업한 작품들은 80년대와 90년대 작업했다는 아크릴 유화 등 일반 미술품과 2000년대 들어서면서 몰두했다는 각종 집기와 사진, 시 등이 어우러진 조각품으로 구분된다. 그의 조각품 중 일부는 그만의 난해한 생각을 담아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작품도 상당수다. 그럼에도 작품에 대한 김씨의 자부심은 상당했다. 김씨는 “멋진 건물 로비에 내 작품이 화려한 조명을 받고 전시되는 날을 아직도 꿈꾼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도 끝까지 붓을 놓지 않던 김씨는 얼마 전 응급실에 실려 갔다 오면서 모든 활동을 접었다. “어머니가 1999년에 돌아가신 이후 혼자가 됐어요. 그 후로 응급실에 갈 때면 겁부터 나요. 작품 활동은 더 이상 할 수가 없더군요.”
김씨는 “어린 시절 척추 손상으로 입은 장애가 점점 나이가 들면서 흉부를 압박하는 구조로 변해 결국 심폐기능이 약해졌다”며 “이로 인해 응급실로 향하는 횟수도 벌써 지난 2년간 다섯 번이 넘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시를 마치면 그 다음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으로 갈 것”이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외로워요. 죽을 때 내 손 잡아줄 사람 하나 없는 이곳을 떠나야죠.” <함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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