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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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부자들(3)

2013-07-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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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중 칼럼

19세기 중엽은, 미국이 시대적으로 남북전쟁이 끝나고 국가 전체가 통합되면서 비약적인경제 성장을 이루는 시기였다. 그 이면에는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완성되어 현대적인 대량생산이 시작되던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대량생산을 하기위한 시설들은 물론이고 공장을 통하여 생산된 대량의 생산품들을 제대로 소비하기위한 기본시설의 구축이 필요하였고 이런 산업활동에참여한 여러 사람들이 큰 돈을 벌기 시작하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대량생산과 제품의 유통에 필요한 기반산업중에는 철도와 철강산업등이 포함되었고 이러한 분야들을 주도한 사람들이 당연히 경제의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막대한 돈이 돌게 되므로 역시 주식시장이나 금융업도 발전하였고 여기에 종사한 금융인들이 많은 돈을 벌었던 시기이다. 그 중의 대표가 항만과 철도사업으로돈을 번 밴더빌트 가문이었고 이들이 미국 최초의 재벌가문이 되었고 현재도 미국 최고의부자가문이다.

그런데 이 밴더빌트의 자산분배는 그들의 가족이나 혹은 미국에 한정되지 않았으며 그 영향력 또한 지금의 세계 경제에 까지 미치고 있다. 필자에게는 꽤 흥미가 있는 내용이라 그 과정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았다.


지난번에 언급했던 것같이 16세의 어린 코넬리우스가 뉴저지와 뉴욕을 오가는 작은 보트로비지니스를 시작하여, 정시 페리운항을 기초로재벌이 되고 그의 아들인 윌리엄 밴더빌트에 의하여 이 가문은 명실상부한 미국 최고의 부자가문이 되었다. 그런데 윌리엄에게는 첫 부인인 앨버와의 사이에 뛰어나게 아름다운 딸 콘스엘로가 있었다. 어머니인 앨버는 그 당시 미국부자들이 흔히 그랬듯이 영국의 귀족인 말보로우 공작, 찰스 S. 처칠에게딸을 시집보내려고 했으나 콘스엘로는 평범한 미국인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지략가로 알려진 앨버는 딸이 사랑하는 미국남자를 죽이고 자신도 목을 매어 죽겠다고 딸을 위협하여, 콘스엘로는 어쩔 수 없이 영국의 공작과 결혼하였다고 한다. 사랑 없이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사이라 그들도 이혼을 하고 후에는 각자 재혼을 하였지만 미국의 재벌이 영국을 비롯한유럽의 귀족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그에 따라 미국의 영향력이 유럽으로 미치게 되었다.

유럽의 귀족들은 주로 땅이나 성을 재산으로가지고 있으므로 유동성이 떨어져 돈 때문에미국의 상속녀들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19세기후반 사치에 빠진 유럽 사교계에서 체면유지를하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했다고 하니 이해가 되는 일이다.

이렇게 콘스엘로와 결혼한 챨스 처칠은, 그 유명한 처칠수상의 아버지와 사촌간으로 윈스턴처칠수상의 어머니인 제니 제롬도 미국갑부의상속녀이다. 그 뿐인가 남성편력이 심했던 처칠 총리의 며느리였던 파멜라 딕비는 영국의 귀족 가문출신이나 나중에 미국의 또 다른 철도가문의 W. 해리먼과 세 번째 결혼을 했다.

그로 인해 나중에 해리먼의미망인이 된 그녀는 1992년 민주당 전국의장이 되어 풍부한자금을 가지고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Bill Clinton)을대통령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돈의 위력이다. 그 후 파멜라 딕비 해리먼은 클린턴 정부에서 프랑스주재 미국대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에는 또 다른 재벌가의후손이며 대북 정책의 기준이 되는 페’ 리 보고서’의 작성자인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있었다. 그는 후에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1994년 1월부터 클린턴 정권의 국방 장관이 되었는데 취임 즉시 북한의 핵 의혹을 재기하여 군사적 긴장을 조장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1997년 1월 장관 퇴임뒤에도 1999년까지 북한의 핵 의혹 문제를 둘러싼 정책조정관으로 한국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그 뿐아니라 그는이전1977년부터 카터 정권에서도 국방 차관으로 재직한 경력도 있다.

지미 카터가 대통령에서 퇴임한 뒤에도 북한문제와 관련된 외교 무대에 등장할 수 있었던것은 이 재벌이 배후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는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투자은행의 경영자로서, 또유수의 군수기업의 실제 사주인 회장으로서 거대한 사재를 축적하였다. 그가 부를 축적할 수있었던 것은 이라크 군사 분쟁과 아시아의 긴장,그리고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유고 공격등이 기회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윌리엄 페리는 금융업으로 유명한 벨몬트가의 원조 어거스트 벨몬트의 부인인 캐롤라인페리의 후손이다. 그런데 캐롤라인의 아버지가바로 검은 함선으로 알려진 메튜 페리 제독이며, 제독의 동생인 나다니엘에겐 조세핀이라는 손녀가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미국 제일의 금융왕 존 P. 모건의 조카이다. 결과적으로미국 제일의 부호 밴더빌트가에서 대양을 항해할 만한 규모의 대형 증기선 66척을 소유하여 미국을 지배하였고, 19세기 중반에 페리 제독은 그 중 4척을 이끌고 항해를 하여 일본을개항시켰다. 일본의 개항이 아시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그의 후손인 윌리엄 페리는 미 국방부의 요직을 거치며 21세기 현대사회에서도 큰 영향력을행사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미국을 움직이는 실체는 백악관이나 미 의회도, 혹은 버냉키의장이 이끄는 FRB(연방 준비제도이사회)도 물론 아니고 바로 미국의 재벌들이라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최고의 강국으로 세계적으로크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부자들이 더욱 궁금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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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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