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취소 통지서

2013-05-11 (토) 12:00:00
크게 작게

▶ 다니엘 홍 교육전문가

약 2만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수렵에 나서기 전 동물을 벽에 그려놓고 주문을 외치며 사냥연습을 했다는 가설도 있고, 사냥에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딱히 할 일이 없어 그림을 그렸다는 추측도 있다. 어떤 이유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벽화의 주인공이 그림을 통하여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한 점이다.

한국의 미아리, 인사동, 대학로 주변에 널린 사주 카페에 대학생, 직장인, 정치인, 사업가들이 몰려들어 생년월일을 대고, 손바닥을 내밀고, 얼굴을 들이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확실한 미래에 관한 궁금증 해소 혹은 심심풀이로 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걱정을 덜고 마음의 위안을 받기 위해서다. 마치 정신분석, 치료상담을 위해 프로이드의 소파를 찾는 것처럼.

동굴 벽화, 사주 카페, 프로이드의 소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자신의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을 장소와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인터넷 등장 이후, 오늘날은 소셜 미디어가 인간의 바탕에 깔려 있는 자기표현 욕구를 채워주는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시댁과의 갈등, 육아문제를 놓고 속내를 털어놓는 마당 미즈넷, 정치와 사회의 불합리, 불공정성을 토로하는 광장 아고라, 그리고 친구를 무한정 만들 수 있는 페이스북 등은 개인생활을 드러내고 자신을 표현하며 위안을 얻게 한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는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도구로도 역이용될 수 있다.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자마자 일찌감치 등록을 마친 K군은 지난주 두 군데 대학으로부터 합격취소 통지를 동시에 받았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두 군데 대학에서 장학금을 주고 서로 오라고 해서 두 곳 모두에 디파짓을 보냈다”라는 자랑을 늘어놓은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또 다른 학생은 “이제 대학 등록을 마쳤으니 공부 끝, 파티시작에 들어간다. 지금부터 내가 여자애들 어장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라”라는 글과 함께 웃통을 벗어 제치고 술에 절어 흥청거리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우리 대학의 취지에 부적절한 행위를 보였기에 등록 취소를 하겠다”라는 통지를 받았다.

전액 장학금을 받은 어느 학생은 자신의 블로그에 인종차별 글을 게재한 것이 등록 대학의 입학사정관에게 발각되어 합격이 취소되었다. 또한 자신의 트위터에 등록 대학의 입학사정관을 폄하하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가 등록이 취소된 여학생도 있다.

입학 경쟁률이 심한 대학일수록 지원자의 배경과 활동 여부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마라. 상황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묘하게 처신하라”는 손자병법의 가르침은 입시 전쟁터에 직결되는 지혜다. 대학에 디파짓을 보냄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믿고, 기분 내키는 대로 만천하에 감정을 폭발하고 싶다면, 잠시 억제하고, 지금은 빅데이터 시대라는 것을 먼저 상기하자.

이 시대에는, 부모와 친구도 눈치 채지 못했던 여고생의 임신 사실을 대형 마트가 먼저 알아낸다. 그녀의 구매패턴이 칼슘, 마그네슘 영양제, 그리고 무향무취 로션 등 임산부에 필요한 물건 구입에 집중되는 것을 추적, 분석하여 타겟 스토어가 그 여고생에게 산모용 옷과 유아용 물품 쿠폰을 보낸 것이다.

“우리 딸을 어떻게 보고…”라며 부모가 항의에 나섰으나 뒤늦게 딸이 임신한 사실을 알아내고 오히려 타겟에 사과를 했다. 빅데이터 시대의 소셜 미디어는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한 빅 브라더의 화신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