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석푸석한 땅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생명들의 몸짓을 보면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산골 계곡에 얼어붙었던 얼음이 녹아 흐르는 계곡 물소리일수도 있고, 아지랑이 차고 오르는 노고지리(skylark) 소리일 수도 있다.
겨우내 시꺼멓게 굳어있던 고목에도 잎이 솟아오른 세월의 변화 속에 점점 늘어나는 흰머리 가락을 쓸어 올릴 때면 늙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늙는다는 것은 육체가 세월 따라 노쇠해 간다는 것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만은 청춘이고 싶은데 흰머리 가락을 만질때면 육체의 노쇠만을 의미하기 않고 삶의 전체가 노쇠의 길로 들어섰다는 의미로 느껴져서 가끔 마음이 언짢을 때가 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월의 흐름 속에 언짢아지는 것은 다름 아니라 늙음을 적응해 내지 못하고 아직도 젊다는 나의 마음 밭에서 세월의 흐름을 반역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때때로 나의 딸들이 엄마가 나이가 많이 들어 자기들 세계에 대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벽창호(?)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있지만, 난 생각이 고루하고 낡아서 딸들이 펴내는 마음의 꽃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낡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나와 그들이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장벽들은 몸은 늙어도 감정은 늙지 않는 것 때문에 가끔 회의해 볼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회의에 빠지다가보면 갑자기 스스로가 외로워지고 쓸쓸한 마음이 되어 살아가는 일에 신명이 빠 질때가 있다. 결국 세월도 기쁨도 슬픔도 구름처럼 지나가는 인생의 무상함을 알아감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위로해 보면서도 말이다.
교황 바오로 2세가 임종 할 즈음 마지막으로 한말은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들도 행복 하십시오” 라고 했다고 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슬픔과 고독 그리고 후회가 가슴에 응어리지지 않고 행복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한순간에 일어난 감정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신앙인의 긍정적인 태도의 결과일 것이라고 평한 글을 읽으며, 걸어온 나의 인생행로를 가만히 뒤돌아보면서 나는 과연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서양 격언에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엔 한국에서 30년의 세월이 있었고, 미국에서 40년의 이민자로 살면서 초창기엔 너무나도 외로워서 울었고 또 힘들고 고달파서도 많이 울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속에 오늘이 있기까지 건강과 축복으로 가득채워 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세상과 더불어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理想)을 잃을 때 늙는다고 한다. 규칙적인 생활속에서 절대로 이상을 잃지 않는 굳건한 믿음 지켜가며 더 이상 늙지 않는 날들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