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김해연 l 길 위에서
2013-04-11 (목) 12:00:00
길 위에서 살고 있고 또 살아간다. 어제의 길을 지나 또 오늘이라는 길을 걸으면서. 다시는 같은 길을 걸어가지 못할 걸 알지만, 그래도 혹 돌아올까 봐 뭔가를 흘리면서 간다. 주섬주섬 담지도 못할 세상의 것들을 한가득 안고 또 흘리면서. 사실은 바로 앞의 길이 굽은지 가파른지 그것조차도 알지 못하면서 그냥 걷는다.
떠밀려 가듯 살지 않으면서 나무를 보지 않고 진정 숲을 보면서 걸어가게 해주십사 기도한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모르는 길이라고 함부로 아무렇게나 갈 순 없다. 그래도 남들처럼 제대로는 걸어가야지 하면서도, 진정 나는 무엇 때문에 이 길을 걷고 있고, 왜 걸어야 하고, 끝을 모르면서도 왜 마냥 걸어야 하는 것일까라는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무슨 목적이 있어 지금 이 길 위에 있을진대, 정작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배웠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 너무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고 애쓰면 오히려 더 힘들고 복잡하다. 그냥 지금 내게 내려진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서, 가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며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다.
어제는 연습이었고, 오늘은 실제로 살아야 하는 것이며, 내일은 각본 없이 새로 시작되는 또 다른 오늘이라는 무대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영원할 것 같은 오늘이라는 지금 때문에 욕심내고, 애태우고 또한 더 많이 가지려는 두 마음의 나는 서로 구속하려 싸운다. 세월이 가면 그래도 무언가는 깨달아 조금은 다른 길로 가게 될 거라는 생각들은 오히려 점점더 모르겠고 힘들다. 어느 누구에게도 작은 길 위의 표시 하나도 남길 수가 없다. 점점 더 사는 것에 대해 겸손해지기 때문일 거다. 앞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저절로의 존경이 새삼 머리를 숙이게 만든다.
살아가면서 반복되는 수많은 실수와 후회를 계속하면서도 그래도 그 안에서 더 많이 배우고 찾고 하면서 가는 도전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도 지금 또 걸어가는 길 위에 서 있다. 어쩌면 꿈꾸든 멋진 이정표가 아닌 작은 아주 작은 불빛이더라도 길 위의 깜깜한 어둠 속에 조금이라도 밝혀줄 작은 등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