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영묵 소설, ‘워싱턴에서 3박 4일’을 읽고

2013-03-24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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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연홍 시인, 버지니아

이영묵은 경기고, 서울대 공대 출신의 늦깍이 작가. 그는 워싱턴 문인회장을 지내기도 한 소설가.
그는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고 주장 한다. 그가 내놓은 소설론 자체가 재미있다. 소설은 문학성 보다 재미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아마 그가 아직 아마추어 작가 군에 머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선입견을 갖고 그의 소설을 읽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소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갖추고 있었다.
우선 소설의 구성, 이야기 요소들의 배열, 시간과 공간이 그런대로 서울에서 시작한 첫사랑이 워싱턴에서 비극적으로 끝나는 전개가 독자들에게 소설적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그 첫사랑의 남자가 바람둥이였던, 아니던 그 첫사랑의 대상인 여자에게 ‘치명적’이 되는 소설이 나이든 독자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동물’인가? 20대 젊은 시절에 육체파 여배우와 정사를 나눈다거나 미국에 건너와 값싼 여자들과의 정사가 남자의 여성관이라면 한 여자에게는 생애를 걸고 죽을 수 있는 아픔을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으니, 순정파 여자가 측은하다.
그러나 그 첫사랑의 비극적 종말 배경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원수지간의 가문의 관계가 들어있다. 그 관계는 조선시대 후기, 명문가 동래 정씨의 가문과 그보다 낮은 품계의 양반 강씨 집안의 길고도 긴 악연이 한일합방, 일제식민지시대, 해방정국, 한국전쟁의 길다면 긴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그러나 첫사랑은 그런 악연을 넘어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쉽게 넘지 못하고 무너진다. 작가의 설명은 이 대목에서 좀 모라란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명문가 동래 정씨가 이 소설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할 수도 있겠다. 작가는 정씨 가문을 욕되게 하지는 않았는가. 하도 소송이 난무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남자 주인공 두사람과 여자 주인공 두 사람의 인간관계가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또 하나의 맥이다. 결국 첫사랑의 여자는 그 바람둥이 친구의 아내가 되고, 그 여자를 죽이고 자기도 죽는 슬픔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끝이 ‘안나카레리나’ 같은 비극이다. 이영묵의 경우, 불륜의 미화소설은 아닌데. 그렇게 울림이 온다. 지금 70대 초반의 작가가 살았던 60년대 한국에는 아직 처녀성이 중요하게 간직하던 시대.
작가 이영묵에게 그 처녀성은 이 소설을 끌고 가게 만든 핵이 아닌가 몰라. 한국과 미국이란 사회배경, 이민사회의 단면, 그리고 워싱턴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이 워싱턴의 문학세계를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지 않았나.
소설이 드문 한국계 1세대 문학, 다시 말해 워싱턴의 한국문학에 이 소설은 보기 드문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워싱턴이란 도시, 거기 살고 있는 한인들 속의 문학은 어떤 것일까, 누가 물어온다면 나는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그의 건강과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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