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 대학원

2013-03-2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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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전 수필가

지난 해 세모에 우리 부부는 인생대학원에 신입 했다. 까다로운 입학 절차는 없고 다만 55세 이상이어야 입학이 허락된다. 평생교육이므로 졸업년도 등은 정해져 있지 않으나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개인의 운명에 달려 있다 하겠다. 캠퍼스는 650에이커의 넓은 대지에 5층, 3층, 단층 집 등으로 조성돼 있으며 알맞은 거리를 두고 자연경관이 손상되지 않게 숲 속에 산재해 있다.
운전 거리에 많은 신경을 쓰는 노인들을 위해 최단거리 운전으로 갈 수 있게 커브I 또는 커브 II로 분류, 건강 유지도 되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게 제반시설을 구비해 놓았으며 심심치 않게 각종 비주얼 아츠 이벤트도 열리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고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취미에 따라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두뇌회전에 필요한 지식도 얻을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독주택에서 생활해 온 사람들에게는 자연과의 대화가 원거리 공간을 통한 시각적 사색이라는 점이다.
캠퍼스 내 동료들은 한세상 살아 온 사람들이라 마음도 너그럽고 예의도 바르다. 엘리베이터 속에서는 물론 어느 곳에서 만나더라도 초면인데도 10년 지기처럼 다정히 인사한다. 말문이 열려 개인의 살아 온 세월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그것인 것 같으나 그 속에 개인의 인생 드라마가 있음을 안다.
갓 이사하고 짐을 풀어 정리할 생각을 하며 너무 을씨년스러워 날은 저물어 가는데 창가에 다가서서 입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밖은 노부모를 방문하는 가족들로 붐비고 있었다. 눈이 가볍게 내리기 시작하더니 함박눈으로 변하고 짐을 내리는 젊은이들의 어깨에도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눈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차의 후드를 열어 놓고 짐을 내리기에 바쁘다.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은 고국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한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사회생활 패턴을 우리가 살아 온 사회생활 체제하의 가족제도와 비교할 수 없지만 세계화, 현대화와 더불어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단위에서 조차 ‘프라이버시’라는 미명 아래 거리감을 조성하는 참으로 황량한 사회가 된 것이다.
이사를 하고 서투른 생활 속에 감기에 걸려 증상이 앞으로 진행됐다 후퇴했다 하면서 약 2주일 앓다가 회복기에 접어들 무렵 새해 첫 모임의 이벤트, 댄싱이 있다기에 성장(盛裝)을 하고 클럽 I에 있는 테라스 룸으로 갔는데 댄싱 무드가 아니다. 일기가 나빠서 취소했단다. 이왕 나왔으니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옆 테이블에는 가족모임인 듯 연령층이 다른 12명이 몰려 식사를 끝내고 담소하고 있다. 그러다 우리 부부의 옷차림을 보고 노부인은 자기도 춤을 추었노라고 조심스럽게 몇 스텝 밟으신다. 보조보행기에 의지하여 주차장까지 천천히 가시며 어깨, 엉덩이 가볍게 흔들며 댄싱은 언제나 즐겁다고 하신다. 노부인은 99세, 남편은 97세 장수 부부이다. 이곳 인생 대학원에 사시는 분들이다.
이래저래 인생 대학원 학생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동심에서 사시기에 눈 속에 그늘이 없고 항상 즐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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