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양이보다 못한 사람

2013-03-15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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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란 수필가, MD

나는 어려서부터 이상하게 고양이를 무서워해서 가까이서 안아보지도 못하고 키우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그런 내가 사람을 해칠 것 같다는 그들에 대한 오랜 선입감이 서서히 변해가는 것은 주위에서 들어온 그들에 대한 많은 얘기들 때문이리라.
그래서 지금은 동생 집의 고양이가 예뻐 보이고 또 그들도 인간과 다름없이 특별한 느낌과 감정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뉴저지 주에 사는 부부가 3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여행을 갔다가 그들이 키우던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돌아와 상심하고 있는 그들 앞에 거의 3개월이 지나 바로 그 고양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먼 길을, 하이웨이들을 어찌 알고 찾아왔나 사람들은 그들이 아무리 스마트하고 의리가 있다 해도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한국에 사는 여동생에게 했더니 동생은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생이 사는 동네에 한국 남편에게 시집온 마사꼬 라는 일본 여자가 하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 온지 채 한 달이 안 된 어느 날 마사꼬는 자기네 고양이 ‘사랑이’를 옆집 영식이 엄마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남편과 함께 동네 목욕탕에 갔다. 남편과 30분후에 목욕탕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우나에 잠시 누었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후딱 지나버려 남편과 만나기로 한 시간에서 30분도 더 지나 있었다.
목욕탕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무리 둘러보아도 남편은 보이지 않고 몇 개의 골목을 돌아왔나 생각해 보지만 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수중에 돈 까지 없으니 낯선 곳에서 막막하기만 했다.
밖을 내다보던 목욕탕 여주인은 자기 딴에는 도와준다며 “당신 남편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 보지만 요즘 한국에 온지 한 달이 안 된 그녀에게 한국말은 너무 어려웠고 머릿속에는 일본말만 맴맴 돌 뿐이었다.
목욕탕 여자는 신난 듯 “아니 이 여자야,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주소도 몰라요?"라며 타박하더니 “아줌마, 그냥 기다려 봐요. 어떤 놈이 나쁜 맘 먹지 않았으면 신혼인 자기 마누라 팽개치고 도망 갔겠수?"라고 위로했다.
한편 집에서는 고양이를 잠시 봐주기로 한 영식이 엄마는 거의 두 시간 반이 훨씬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마사꼬가 걱정이 돼 앞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이놈의 비는 왜 이리 많이도 오나 하며 소리쳤다.
이때 방안에서 잠을 자던 고양이 ‘사랑이’가 쏜살같이 빗속으로 달려 나갔다. 당황한 영식이 엄마도 할 수 없이 우산을 갖고 쫓아 나섰다. 사랑이는 그녀를 보자 뒤를 힐끗거리며 뛰었다.
그들이 목욕탕 앞에 도착했을 때 목욕탕 문 앞에서 울상이 된 마사꼬를 보고서야 왜 고양이가 자신을 그곳에 끌고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양이가 마사꼬를 찾아나서는 동안 그 알량한 한국 남편은 10분쯤 기다리다 안 오자 인근 포장마차 대폿집에서 한 잔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했다.
마사꼬 얘기를 전해들은 동네 사람들은 “인간의 탈을 쓰고 의리 없고 못된 짓만 하는 사람들은 고양이만도 못한 놈들이지, 어떤 땐 동물이 백배 낫다”고 입을 모았다.
말 못하는 고양이, 개도 주인을 알아보고 의리를 지키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의리를 저버려서야 되겠는가…. 인간의 신의(信義)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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